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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Apr 22. 2024

초록의 시간 744 사랑의 뻔뻔함

사랑의 무모함

이웃 아파트 화단에 피어난

꽃분홍 모란꽃이 너무 예뻐서

그 앞을 지날 때는 발걸음을 늦추고

천천히 걷습니다


몇 걸음만 더 들어가면

고운 모란을 눈앞에서 볼 수 있으나

보이지 않는 선을 넘지 않

그어지지 않은 금도 밟지 않으려고

제자리걸음입니다


문은 열려 있고

아무도 앞을 가로막지 않는데

선뜻 걸음을 내딛지는 못하고

'집 앞' 노래처럼 서성입니다


꽃을 보는 마음은

꽃보다 귀한 마음이니

망설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 몇 걸음이 쉽지 않습니다


며칠을 서성서성 지나치다가

꽃이 이울기 전에 만나보리라~

사랑이라는 이름의 뻔뻔함으로

드디어 그 몇 걸음을 내딛습니다


마침 경비아재님이

모란에 물을 주고 계셨거든요

뜰하게 보살피는 분이 계시니

예쁘게 피었네요~

꾸벅 인사를 건네고

꽃구경을 청했습니다


그런데요

잠이 덜 깬 모란이

꽃단장을 미처 덜했나 봅니다

꽃이파리들이 가지런하지 않고

요리조리 삐딱선을 타고 있어요


꽃이파리는 제멋대로지만

그래도 비딘결처럼

곱고 화사해서 사랑스러워요

꽃분홍 모란과 눈을 맞추고

돌아 나오며 생각합니다


사랑이란

때로 뻔뻔함이구나~

망설임에서 멈추지 않는 것이 사랑이고

금을 밟고 선을 넘어서는 것이

사랑인 거구나

앞으로 내디딘 그 몇 걸음이

바로 사랑이구나


모란을 만나려고

선을 넘고 금을 밟아 선 내가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해서 또 피식 웃어요


그렇군요 사랑이란

때로 무모함이기도 합니다

무모하지 않으면 앞뒤 없이

덥석 다가서지 못하니까요


사랑의 뻔뻔함

그리고 사랑의 무모함

인생이 진지한 다큐라면

사랑은 엄근진 다큐보다

웃픈 예능에 가깝지 않을까요


사랑에 대해 문득 생각하는 봄날이

활짝 핀 모란과 함께 무르익어갑니

모란이 지고 나면 뒤를 이어

수줍은 작약도 피어날 테니

스치듯 저무는 봄날이

그다지 아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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