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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Apr 26. 2024

초록의 시간 747 일용할 기쁨

일용할 양식

물 한 모금이 간절히 마시고 싶던

모진 순간이 있었어요

찬 우유 한 잔이 애타게 그리웠으나

의사 선생님이 단호하게

놉~ 안 된다고 하셨죠


앙증맞은 약병들이

대롱대롱 매달린 수액을 맞으니

배가 고픈 건 아니었으나

밥때가 되면 어김없이

마음이 고팠어요


제발 물 주세요

밥도 좀 주세요~

아무리 사정을 해도

보름 가까이 금식 표시는

온갖 검사들에 지치고 멍든

나를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졌어요


스스로 짠하고

아프고 외롭고 서글프던 그때

시원한 물 한 모금의 행복과

밥 한 그릇의 따스함

그 크나큰 기쁨과 즐거움이

늘 내 곁에 있었으나

미처 모르고 무심히 지나왔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지극히 당연한 일상의 일들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깊은 즐거움인지

그제야 알게 되었으니

잃어봐야 소중함을 깨닫는 것은

밥 한 그릇과 물 한 모금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수술을  눈 비비며 깨어나

회복하면 무엇을 할까~

아니 무얼 먹을까~

버킷리스트 대신

먹킷리스트를 머릿속에 적어두고

행복한 상상에 빠지던 순간이

문득 떠오릅니다


먹고 싶은 그 첫 번째가

물이었어요

맑고 시원한 물 한 모금

따뜻한 죽 한 그릇과

차갑고 고소한 우유 한 잔

쌀빕 한 그릇과 잘 익은 김치

그리고 한 잔의 커피


그러나 김치의 매운맛은

한참 후에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순한 김치를 먹게 될 무렵

커피도 마시게 되었으나

여전히 김밥은 망설이게 되었어요


5년이 지나며

다시 먹킷리스트를 씁니다

모진 시간들을 잘 견뎌냈으니

이제 맘껏 실컷 먹어보자고

몸에 안 좋은 것도 가끔은 먹어보자고

일탈을 꿈꾸는 말썽쟁이처럼 

헤벌죽 웃습니다


하고 싶은 일 이전에

먹고 싶은 것부터 조르르 줄을 세우며

지금 제일 먹고 싶은 건 뭐지?

곰곰 생각했는데

그 첫 번째가 김밥 한 줄이었어요


수술 직후 금지 음식이던 몇 가지를

그 이후로도 한참을 먹지 않았습니다

상처가 잘 아물었으니

먹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그냥 그렇게 참아보고 싶었거든요


김밥 한 알을 집어 들며

잘 견딘 내가 기특하고 고마워서

배시시 웃음이 납니다

국민김밥 한 줄이 감동김밥이 되고 

인생김밥이 되는

찐하게 고마운 순간~


일용할 양식이라 쓰고

일용할 기쁨이라고 읽으며

오늘도 이렇게 나에게 와준

건강하고 평온한 하루를

감사히 끌어안습니다


오늘 내가 만날 사람들과

내가 먹고 마시며 누릴

밥과 물과 커피 그 모두가

감동선물이고

인생선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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