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 모금이 간절히 마시고 싶던
모진 순간이 있었어요
찬 우유 한 잔이 애타게 그리웠으나
의사 선생님이 단호하게
놉~ 안 된다고 하셨죠
앙증맞은 약병들이
대롱대롱 매달린 수액을 맞으니
배가 고픈 건 아니었으나
밥때가 되면 어김없이
마음이 고팠어요
제발 물 주세요
밥도 좀 주세요~
아무리 사정을 해도
보름 가까이 금식 표시는
온갖 검사들에 지치고 멍든
나를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졌어요
스스로 짠하고
아프고 외롭고 서글프던 그때
시원한 물 한 모금의 행복과
밥 한 그릇의 따스함
그 크나큰 기쁨과 즐거움이
늘 내 곁에 있었으나
미처 모르고 무심히 지나왔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지극히 당연한 일상의 일들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깊은 즐거움인지
그제야 알게 되었으니
잃어봐야 소중함을 깨닫는 것은
밥 한 그릇과 물 한 모금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수술을 받고 눈 비비며 깨어나
회복하면 무엇을 할까~
아니 무얼 먹을까~
버킷리스트 대신
먹킷리스트를 머릿속에 적어두고
행복한 상상에 빠지던 순간이
문득 떠오릅니다
먹고 싶은 그 첫 번째가
물이었어요
맑고 시원한 물 한 모금
따뜻한 죽 한 그릇과
차갑고 고소한 우유 한 잔
쌀빕 한 그릇과 잘 익은 김치
그리고 한 잔의 커피
그러나 김치의 매운맛은
한참 후에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순한 김치를 먹게 될 무렵
커피도 마시게 되었으나
여전히 김밥은 망설이게 되었어요
5년이 지나며
다시 먹킷리스트를 씁니다
모진 시간들을 잘 견뎌냈으니
이제 맘껏 실컷 먹어보자고
몸에 안 좋은 것도 가끔은 먹어보자고
일탈을 꿈꾸는 말썽쟁이처럼
헤벌죽 웃습니다
하고 싶은 일 이전에
먹고 싶은 것부터 조르르 줄을 세우며
지금 제일 먹고 싶은 건 뭐지?
곰곰 생각했는데
그 첫 번째가 김밥 한 줄이었어요
수술 직후 금지 음식이던 몇 가지를
그 이후로도 한참을 먹지 않았습니다
상처가 잘 아물었으니
먹지 않을 이유가 없지만
그냥 그렇게 참아보고 싶었거든요
김밥 한 알을 집어 들며
잘 견딘 내가 기특하고 고마워서
배시시 웃음이 납니다
국민김밥 한 줄이 감동김밥이 되고
인생김밥이 되는
찐하게 고마운 순간~
일용할 양식이라 쓰고
일용할 기쁨이라고 읽으며
오늘도 이렇게 나에게 와준
건강하고 평온한 하루를
감사히 끌어안습니다
오늘 내가 만날 사람들과
내가 먹고 마시며 누릴
밥과 물과 커피 그 모두가
감동선물이고
인생선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