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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Apr 28. 2024

초록의 시간 748 꽃보다 사람이라는데

꽃보다 신록이라 해도

꽃보다 사람이라는데요

꽃보다 신록이라 해도

그래도 신록을 위한 꽃이고

사람을 위한 꽃이라서

꽃이 있으니 신록이 눈부시고

꽃으로 인해 사람도 더불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세요 꽃 진 자리에

스스로 챙겨 쓴 수줍은 왕관 하나

눈부시진 않으나 새초롬 예뻐요

영광스럽게 빛나는 왕관이 아니라

세상 다녀간 흔적으로 애틋한

사랑스러운 꽃의 왕관을

잠시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묻습니다


꽃은 왜 필까요~

부질없고

어이없는 질문이라서

내가 먼저 웃고 맙니다


그건 말이죠~

꽃 진 자리를 지키는 꽃의 왕관이

빙긋 웃더니 이렇게 대답하는 듯해요

지는 법을 배우려고 피어나거죠


푸르게 돋아나는 새 잎들에게도

살며시 묻습니다

잎은 왜 푸르러지는 걸까요~

초록으로 무성해져서

자신을 가리는 법을 배우려는 거라고

초록잎들이 대답합니다


꽃이파리 떨구고

빈 줄기로 우두커니 서 있기보다는

바람과 함께 흔들리기 위해서라고

바람이 부는 대로 나풀대기 위해서라고

잎새들이 입을 모아 대답합니다


그럼 열매는~

왜 맺히느냐 물으려다 맙니다

아직 열매가 맺히지 않았으니

어디를 향해 물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피식 웃고 말아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아요

둥근 열매들은 땅 위로

곱게 떨어지는 법을 배우기 위해

또랑한 눈망울로 맺히는 것일 테죠


꽃보다 신록이고

꽃보다 사람이라지만

꽃이 있으니 신록이 이어지고

꽃이 있어서 사람이 고운 것임을

꽃 진 자리에 잠시 머무르며

고개 끄덕입니다


피는 꽃이 고운 것은

시들어 떨어질 줄 알기 때문이고

지는 꽃이 아름다운 건

잎새와 열매에게 양보하는

귀한 마음이 있어서인 거


채워야 하는 꿈이 있어

초승달이 아름답고

욕심을 비워내는 그믐달이

꽃이 지듯 아름다운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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