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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Jul 21. 2024

초록의 시간 810 진실한 사랑에 관하여

영화 천하무쌍

능소화 꽃이 얼마나 피었나 보려고

슬리퍼 끌고 집 앞에 나갔다가

이팝나무 가로수에서 솜사탕 흩어지듯이

포르르 나풀대는 여름 눈을 밟고 돌아와

오래된 홍콩 영화 한 편을 봅니다


황제와 여동생 장공주 무쌍

객잔을 운영하는 동네 건달 이룽

여동생 펑제 이야기랍니다

명나라 정덕황제와 평민 사이

세상에 이런 일이~스타일의

코믹 러브스토리라기에

별 기대 없이 스치듯 봅니다


한마디로 황당 무계

천하 무쌍입니다

천하 무쌍은 천하에 둘도 없다는 의미죠

세상에 비길 만한 것이 없다는 건데요

황당 무쌍한 영화라고나 할까요


강호의 방랑자 이룽(양조위) 오라버니

여동생 펑제(자오웨이) 그리고

재미없는 황궁에서 잠시 탈출한

마마보이 황제(장첸) 오라버니 

황제의 여동생 무쌍 공주(왕페이)

스치듯 봐도 일단 찬란한

주연 배우들입니다


4인 4색 매력적인 배우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중경삼림'청량한 커플

경찰 663 역의 꽃미남 양조위와

웨이트리스 결제를 연기한

맑고 풋풋왕페이

두 시람의 모습만으로도 이미 심쿵~


이룽(양조위)이 가만 눈을 감고

두 팔을 늘어뜨린 채 중얼거립니다

'속세의 티끌에 지나지 않아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 쏟아버려

그럼 개운해기지고 가벼워져'


이룽을 그리워하다가 정신줄 놓고

자신을 이룽으로 착각하는 무쌍 공주를

복숭아나무 아래서  끌어안고

이룽이 스스로 공주가 되어

자신의 진심을 건넵니다


반지가 손에 맞으려면

진심을 다해야 한다~

유일한 사랑을 떠올려 보라고

그렇게 서로의 진심을 주고받아요


복숭아꽃이파리

분홍빛으로 흩날리는데

이룽의 중얼거림이 꽃이파리처럼

귓전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속세의 모든 문제는

대부분 손쉽게 해결된다

그저 입장을 바꾸어보라

서로의 모습을 비추어 보라

그럼 세상이 달라 보인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지 않아

그저 함께 있으면 되는 거야'


오래된 영화다운 낯섦과

약간의 거리감 따위 상관없이

선남선녀 배우들의 복숭이꽃 닮은

진실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보며

레트로 감성에 젖어들며 웃다가

영화와 가로수어딘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가로수는 번잡한 도시 한복판에서도

초록 그늘을 아낌없이 드리우며

자연의 평온함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장마철과도 같이 습한 날에는

뿌리로 수분을 빨아들이고

마르고 푸석할 때는

이파리로 물기를 내뿜어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 준다고 해요


한 편의 영화도 길가의 가로수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각박한 현실 한복판에서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 수 있게 하고

마음이 울적할 때 다정한 손길로

가만가만 다독이며 달래 주고

기분이 삭막해지고 푸석할

촉촉한 물기를 머금을 수 있게 줍니다


이팝나무 가로수의 하얀 꽃이파리

영화 '천하무쌍' 속 복숭아나무의 분홍 꽃

가로수와 한 편의 영화 덕분에

오늘 하루도 생기 있고 활기차게

이왕이면 꽃처럼 곱게 웃어 봅니다


확인이 필요하다는 건

진심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영화 속 대사를 중얼거리며

내 삶이 비록 티끌 같을지라도

일단은 벅차게 날아오릅니다


삶이든 사랑이든

티끌이든 하루살이든

진심을 다하면 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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