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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Sep 02. 2024

초록의 시간 838 느리게 기는 기차

영화 '집으로 가는 기차'

기차 여행은 낭만적입니다

느리면 느린 대로 즐겁고

빠르면 빠른 대로 신나죠


차창 밖 풍경을 내다보며 설렘

낯선 곳에 대한 상상으로 기쁨

기차 안에서 먹는 간식이 주는

오순도순 즐거움까지

혼자면 혼자인대로 자유롭고

함께일 땐 함께라서 여유로운

기차 여행은 일상을 벗어난

행복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영화

'집으로 가는 기차'

설렘과 기쁨 대신 고단함으로

어둡고 느리고 심란합니다


실제 주인공 가족이

진솔하게 촬영에 참여했다는

3년여 긴 시간 동안의 고단함

영화 한 편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느리고 어둡고 답답하고 막막한 분위기는

그림자처럼 길게 늘어집니다


캐나다 리신 판 감독이

고향을 떠난 모든 노동자들에게

바치는 영화 '집으로 가는 기차'는

제7회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기차를 타고 다시 배를 타고

고향으로 향하는 그들의 손에는

묵직하고  커다란 짐이 들려있어요

그들의 짐보따리를 보니

중국어 鱿鱼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예전에 중국에서는 일자리를 찾아

이불을 말아 들고 왔다가

일자리를 잃으면

이불을 도르르 말아 들고

떠나기 때문에 생긴 표현이랍니다


오징어를 달달 볶으면

위로 또르르 말리는 모양이

마치 이불돌돌 말리는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이래요


일 년단 한번 음력설에만

집에 다니러 가는 주인공 정 씨 부부

공장 노동자인 그들은 16년 

기차를 타고 집에 다니러 옵니다


90년대 무척이나 가난하던 그 시절

돈을 벌기 위해 어린 아기를

어머니 손에 맡겨두고 고향 떠날 때

아기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그저 안아주는 것뿐이었다~

엄마는 쓸쓸히 말합니다


집에서 편지가 오면 너무 울어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편지를 읽기 전에 미리 음식을 먹고

편지를 읽었다는 이야기가

어쩜 그리 안쓰러운지요


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남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 부탁하고

다시 기차를 타고 일을 하러 떠나는

그들 가족이 그동안 쌓은 건  

가족의 정 대신 갈등입니다


일 년에 한 번 그것도

며칠 잠시 지내다 헤어지니

서로에게 다가서서 부대끼며

마음을 주고받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

데면데면 어긋나고 비켜가는 모습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초록 무성한 여름이 오고

노랗게 익은 옥수수를 수확하는

할머니와 남매의 모습에도

땀방울이 맺힙니다


두메산골에서 벗어나려면

공부밖에 없다고 말하는 할머니도

어릴 적 이곳이 싫어

떠나고 싶었다고 고백합니다


음력설에 단 한 번

엄마 아빠를 만나는 것이 낯설어

기쁘지만은 않고 서로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중얼거리는 소녀학교를 그만둡니다


기차를 타고 초록 들판 고향을 떠나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도시에서 부모처럼 공장 노동자가 되어

봉제공장의 재봉틀 앞에 앉은 소녀는

친구를 따라온 데 적응이 안 된답니다


숙소에서 동료들과 수다를 떨며

힘들지만 돈을 벌 수 있으니 학교보다 낫다고

여기저기 떠돌고 싶다는 소녀들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기도 하고

돈벌이 떠난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면서

도시의 맛과 멋에 서서히 길들여집니다


이 학교를 그만둔 것이 걱정인

부모는 딸을 찾아와 묻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정말 바라고 원하는 게 뭔지

미래를 잘 생각해 보자고 하지만

딸은 시큰둥할 뿐이죠


다시 음력 설이 돌아오고

꽁꽁 맨 이불짐을 챙겨 들고 밀고 밀리며

기차를 타기 위하 다섯 시간 넘게 기다리지만 기차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언제 올지 모른답니다


기차를 타지 못하면 집에 갈 수 없는

갑갑하고 막막한 상황에서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딸의 모습과

그런 이 못마땅한 엄마의 표정이

어수선하게 엇갈립니다


간신히 집에 돌아온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겉도는

아버지와 딸의  다툼으로

시끌벅적 난장판이 되고 말아요


부모는 어렵다고

모든 희망은 아이들인데

자식이 맘처럼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엄마의 모습은

세상 어디에서나 비슷합니다


바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던져진 질문 속에서

집으로 가는 기차는 언제쯤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아끼는

화목한 가족을 싣고 즐겁게 달릴까요


고향을 향해 달리는 기차가

느리더라도 편안하고

고단한 만큼 즐겁고

함께라서 행복한 마음으로

집을 향한 발걸음에 날개를 달고

가벼이 날아오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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