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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Aug 29. 2024

초록의 시간 834 내 이름 아시나요

나의 위로나무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묵찌빠~

갑자기 웬 묵찌빠?!

어릴 적 친구들이랑 놀이할 때

니 편 내 편 편을 가르기 위해 외치던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를

뜬금없이 중얼거립니다


친구들이랑 빙 둘러앉아

까르르 목소리 높이며

끄트머리에 붙이던 묵찌빠는

지방마다 다르다고 해요


서울은 묵찌빠~

인천은 먹고 먹고 쏭 ~하나 빼기

강릉은 꽃이 피어 워이 워이 워이

청주는 헤이맘

광주는 싹싹싹~


세계 지도 속 우리나라는

조그만 순둥이 토끼 모양인데

지방마다 다르게 놀이말이 있다니

작고도 제법 큰 나라인가 봐요


친구들이랑 재미나게 놀던 생각을 하며

이제는 다 큰 내 친구에게 물었어요

너는 기억나니 끝에 뭐라 했는지?

친구의 답은 감자감자뽕~이랍니다


어릴 적 친구와 나는 사는 곳이 달랐으니

놀이노래도 다른 게 당연합니다

같은 서울 아래 살고 있는 지금도

우리 동네 후드득 비 오는데

친구네 동네는 말짱해서

서울이 제법 크고 넓구나 생각하니까요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감자감자뽕~ 중얼거리며

초록 이파리를 바라봅니다

그러나 감자 이파리는 아닙니다


커다란 화분에서 더부살이를 하다가

분홍 화분으로 독립을 하고

드디어 마침내 나 혼자 살게 된

초록 이파리들이 묻습니다

내 이름 아시나요? 


부지런한 식집사도 아닌 내가

어찌 선뜻 대답을 하겠어요

머뭇거리다가 에라 모르겠다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감자감자뽕~ 중얼거립니다

그러다 알았어요


우리 집 화분에서 소리도 없이 자라

하얀 꽃 피고 붉은 열매 맺고

그중 몇 알 그대로 화분에 떨어져

싹이 나고 초록 잎으로 자란

애기 커피나무인 것을요


묵묵히 자리를 잡고

제 몫을 다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사랑스러워서

바라보고 또 바라봅니다


그래 잘 자라주어 고맙다

키 큰 어른 나무가 될 때까지

곁에서 바라보며 지켜줄게

햇살과 바람이 잘 스며들 수 있도록

양지바른 창가에 놓아두고

키가 자라는 순간마다

어김없이 겪게 될 아픔도

손 내밀어 쓰담쓰담 어루만져 줄게


꽃을 피워도 좋고 아님 말고

빨강 열매를 맺어도 좋고

그 또한 아님 말고

넌 그냥 그대로

나의 위로나무야


커피는 나의 힘

커피나무는

나의 위로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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