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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Aug 30. 2024

초록의 시간 835 여름의 끝자락

돌아온 나무 팔찌

길을 걷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춥니다

강아지풀 살랑이는 바로 그 아래

연보라 메꽃 두 송이가

쌍둥이처럼 나란히 피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강아지풀의 나풀거림 따라

어릴 적 기억들이 아련히 피어나고

사랑스러운 쌍둥이 메꽃 두 송이처럼

정답게 나란히 걷던 단짝 친구의

얼굴과 목소리도 떠오릅니다


잊고 잃어가며 사는 게 인생이지만

잊고 싶은데 잊히지 않고

선명하게 살아나는 일도 있고

언제까지나 잊고 싶지 않은데

안타깝게 잊어버리는 것도 있어요


잃지 않으려고 더 절 간직하려다

그만 잃어버리는 것도 있죠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인연이듯

물건과의 인연도 따로 있습니다


엊그제 친구가 몹시 아쉬워하며

톡문자를 보냈는데요

여행지에서 유난히 마음에 들어 산

올리브나무 팔찌를 산책길에서 흘렸는지

집에 와 보니 없더랍니다


동생에게 선물로 주었던 건데

여행의 추억이 담긴 것이니

올리브 향 알알이 고이 간직하며

그 시간의 추억을 들여다보라고

동생이 다시 돌려주더래요


여행은 자주 하지만

여행지에서 쇼핑은 거의 안 하고

액세서리를 즐기는 것도 아니니

어쩌다 친구의 눈에 들어

손에 들어온 나무 찌의 의미를

친구의 동생도 알았던 거죠


친구가 나무 팔찌를 산 게 아니라

여행지의 감성과 추억

고스란히 담아 온 것임을 알고

받은 선물을 되돌려 준

친구의 동생도 기특합니다


잊고 나서 안타깝고

잃은 후에 더 많이 아쉬운 마음을

인연이라는 두 글자로

달랠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인연이면 돌아올 거고

인연이 아니면 필요한 사람 손에서

귀하게 쓰일 거라고

친구의 마음을 다독여 줍니다


그런데요 이틀 후 친구에게서

또르르 문자가 날아옵니다

나무 팔찌를 찾았답니다


산책길 다리를 쉬려고

자주 앉던  나무 의자 끝에

다소곳이 놓여 있더랍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잃어버린 바로 다음 날 

눈여겨 찾아볼 때는

분명 보이지 않았다는군요


다행이라고 답문자를 보냅니다

더 멀리 가지 않고 지나는 길에

떨어져 있었으니 다행이고

누군가 주워 나무 의자 끝에

살며시 앉혀 놓았으니 고맙고

여행의 추억도 함께 돌아왔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순 없노라고


물로 씻어 잘 닦아 창틀에 얹어

햇볕에 말리는 중이라며

친구가 덧붙입니다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나무 팔찌야

동생에게 선물로 건네도 돌아오고

산책길에 흘려도 다시 돌아오는

인연의 나무 팔찌~


그리운 것들이

그리고 그리운 이들이

나무 팔찌처럼 그렇게 되돌아와

쌍둥이 메꽃처럼 나란히 어깨 기대고

해맑게 웃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보송보송 사랑스러운

강아지풀들이 바람에 살랑이듯이

그 시간들이 햇살 속에서 나풀대면

또 얼마나 좋을까요


곁에 두고 싶은 이들이

나무 팔찌처럼 제자리로 돌아오고

계절이 돌아오듯이 다시 돌아오면

참 좋으리라는 생각을 해 보는

여름의 끝자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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