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835 여름의 끝자락
돌아온 나무 팔찌
길을 걷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춥니다
강아지풀 살랑이는 바로 그 아래
연보라 메꽃 두 송이가
쌍둥이처럼 나란히 피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강아지풀의 나풀거림 따라
어릴 적 기억들이 아련히 피어나고
사랑스러운 쌍둥이 메꽃 두 송이처럼
정답게 나란히 걷던 단짝 친구의
얼굴과 목소리도 떠오릅니다
잊고 잃어가며 사는 게 인생이지만
잊고 싶은데 잊히지 않고
더 선명하게 살아나는 일도 있고
언제까지나 잊고 싶지 않은데
안타깝게 잊어버리는 것도 있어요
잃지 않으려고 더 절 간직하려다
그만 잃어버리는 것도 있죠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인연이듯
물건과의 인연도 따로 있습니다
엊그제 친구가 몹시 아쉬워하며
톡문자를 보냈는데요
여행지에서 유난히 마음에 들어 산
올리브나무 팔찌를 산책길에서 흘렸는지
집에 와 보니 없더랍니다
동생에게 선물로 주었던 건데
여행의 추억이 담긴 것이니
올리브 향 알알이 고이 간직하며
그 시간의 추억을 들여다보라고
동생이 다시 돌려주더래요
여행은 자주 하지만
여행지에서 쇼핑은 거의 안 하고
액세서리를 즐기는 것도 아니니
어쩌다 친구의 눈에 들어
손에 들어온 나무 팔찌의 의미를
친구의 동생도 알았던 거죠
친구가 나무 팔찌를 산 게 아니라
여행지의 감성과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 온 것임을 알고
받은 선물을 되돌려 준
친구의 동생도 기특합니다
잊고 나서 안타깝고
잃은 후에 더 많이 아쉬운 마음을
인연이라는 두 글자로
달랠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인연이면 돌아올 거고
인연이 아니면 필요한 사람 손에서
더 귀하게 쓰일 거라고
친구의 마음을 다독여 줍니다
그런데요 이틀 후 친구에게서
또르르 문자가 날아옵니다
나무 팔찌를 찾았답니다
산책길 다리를 쉬려고
자주 앉던 나무 의자 끝에
다소곳이 놓여 있더랍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잃어버린 바로 다음 날
눈여겨 찾아볼 때는
분명 보이지 않았다는군요
다행이라고 답문자를 보냅니다
더 멀리 가지 않고 지나는 길에
떨어져 있었으니 다행이고
누군가 주워 나무 의자 끝에
살며시 앉혀 놓았으니 고맙고
여행의 추억도 함께 돌아왔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순 없노라고
물로 씻어 잘 닦아 창틀에 얹어
햇볕에 말리는 중이라며
친구가 덧붙입니다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나무 팔찌야
동생에게 선물로 건네도 돌아오고
산책길에 흘려도 다시 돌아오는
인연의 나무 팔찌~
그리운 것들이
그리고 그리운 이들이
나무 팔찌처럼 그렇게 되돌아와
쌍둥이 메꽃처럼 나란히 어깨 기대고
해맑게 웃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보송보송 사랑스러운
강아지풀들이 바람에 살랑이듯이
그 시간들이 햇살 속에서 나풀대면
또 얼마나 좋을까요
곁에 두고 싶은 이들이
나무 팔찌처럼 제자리로 돌아오고
계절이 돌아오듯이 다시 돌아오면
참 좋으리라는 생각을 해 보는
여름의 끝자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