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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Nov 04. 2024

초록의 시간 863 가을은 그립다

전생에 우리는

건널목을 건너려고

신호등의 초록불을 기다리다가

잠시 혼자 웃습니다


그늘막 겨울잠 중

봄이 오면 다시 만나요~


뜨거운 여름 내내

햇볕을 가려주던 그늘막이

또르르 곱게 말려 있고

그늘막을 감싸고 있는 겉옷에

가을 인사라도 건네듯이

렇게 쓰여 있었거든요


아직 가을 한복판인데

일찌감치 겨울잠에 접어

그늘막에게 감사인사를 건넵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봄이 오면 다시 만나요~


길을 건너며

문득 전생을 생각합니다


전생에 나는

그늘막 같은 사람이었을까요

그늘막이 되어 누군가의 뙤약볕을

살며시 가려주는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누군가 펼쳐놓은

시원한 그늘막 아래에서

편안히 뜨거운 햇살을 피하는

그런 사람이었을까요


갑자기 웬 전생?

뜬금 전생? 이냐고 물으신다면

꼬맹이 친구 정원이 덕분이라고

대답해야겠어요


사랑스러운 소녀시인 정원이가

반 친구들에게서 건네받은

멋진 우정상의 이름이 바로

'전생에 윤동주상'이랍니다


깜찍 발랄 기발한 아이디어에

흐뭇하게 혼자 웃다가

전생에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


전생이 있었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누군가의 그늘막 아래서

편안히 머무르는 사람이었다면

이번 생에는 누군가를 위한

그늘막이 되어주어야겠어요


이미 겨울잠에 든 그늘막 대신

바람을 막아주는 바람막이가 되어

스산해지는 가을의 순간들을 함께하고

다가오는 찬바람도 살며시 

막아주고 싶습니다


가을비 발자국 따라

곱게 물든 단풍잎들이

정처 없이 날리떠돌다 흩어지

쌀쌀한 가을바람 손잡고

외로움도 한 걸음 더 깊숙해지는

가을은 모든 것이

 그리운 계절이니까요


그래서

가을이라고 쓰고

그리움이라 읽습니다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르는

전생의 한순간까지도

문득 궁금하고

실수투성이에 철부지였던

어제의 나까지도 그립고 안쓰러워서

다독이며 보듬어주고 싶은

가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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