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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Nov 14. 2024

초록의 시간 866 멍 때리는 시간

엄마의 브레이크 타임

아파트 화단에서

멍 때리며 쉬고 있는

막대빗자루와 막대걸레를 보고는

잠시 걸음을 멈춥니다


바람 스산해지며 가을 깊어가고

나뭇잎들 서성서성 이리저리 날리는데

가을바람 이리저리 불거나 말거나

이파리들이 물 들어 떨어지거나 말거나

세상만사 그러거나 말거나

해야 할 일을 접고 우두커니

조는 듯 쉬고 있는 걸레와 빗자루를 

한참 동안 바라봅니다


비질을 다 마친 빗자루처럼

걸레질 말끔히 끝낸 대걸레처럼

편안히 멍 때리며 쉬고 있는

울 엄마의 브레이크 타임 같아요


누구나 그럴 때가 있어요

부지런히 걷다가 문득 멈추어

해 지는 풍경을 묵묵히 바라보며

가라앉듯 내려앉는 저녁해와도 같은

고요하고 적막한 마음으로

멍 때리는 브레이크 타임~


이런 일 저런 일에 마구 휘둘리다가

엉킨 실타래 가위로 싹득 잘라내고

첫머리와 끝자락을 가지런히 놓듯이

해결의 실마리 하나 찾아내고는

후련한 마음으로 주저앉아

멍 때리는 브레이크 타임~


그러나 브레이크 타임은

멍 때리며 멈추는 시간이 아니라

휴식시간이고 준비하는 시간이죠

끝을 내고 마침표 찍는 시간이 아니라

시작을 위한 쉼의 시간이고

활기찬 에너지를 충전하며

준비하는 시간인 거


지금 멍 때리며 쉬고 있는

빗자루는 다시 낙엽들을 쓸어 모으고

댁걸레는 또다시 바닥을 닦으며

깨끗하고 단정하게

다음을 준비하는 거니까요


멍 때리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시간이라고 해요

생각이 더 크고 깊어지기 위해

마음에 더 포근한 사랑을 담기 위해

비움과 채움의 반복을 위해

필요한 시간인 건데요


다 비우고 모두 놓아버린

울 엄마의 브레이크 타임은

그냥 쭉 쉬시는 시간입니다

다시 시작하기 위한

설렘의 준비 시간이 아니라

미련 없이 다 버리고 아낌없이 비우고

그저 멍 때리는 시간이라서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빗자루처럼 우두커니

대걸레처럼 물끄러미

멍하니 자신의 세상에 머무르시다가

어느 순간 배시시 미소 머금으시는

울 엄마의 브레이크 타임은

무심해서 고요하고

무정한 만큼 적막합니다


혼자만의 늪에 빠져

혼자만의 세상에 머무르시더라도

잠시 잠깐 눈을 반짝이시는

그 순간 유난히 감사해서

울 엄마의 브레이크 타임을

너그러이 용서해 드리고 싶어요


잠시 중지된 시간이 아니라

묵묵히 현재 진행 중 그리고

기약 없는 지속형이지만

그냥 그대로 감사한

울 엄마의 브레이크 타임~


그 곁에서 나도 잠시

멍 때리며 웃어 봅니다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 좋은

지금은 가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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