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알랴줌
나는 그대에게 준 것이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데
그대는 내게서 뭔가를 받았다고
자꾸 그래요
그대는 내게 준 것이 너무나 많은데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을 건네면
무슨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수줍게 손사래를 치며 웃어요
길을 걷다가
눈부신 햇살 안고 반짝이는
공 같고 방울 같은 보라 꽃송이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춥니다
가만 들여다보니
오늘의 주인공은 나
우주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바로 나야 나~ 라고 말하듯
존재감 뿜뿜입니다
동그랗게 피어난 보랏빛 꽃
그 이름이 바로 알리움이어서
알려 주겠니? 중얼거리며
잠시 서성댑니다
알려 주겠니? 물으면
안 알랴줌~
도도하게 고개를 내저을 것만 같은
보랏빛 알리움 앞에서
한동안 머뭇거립니다
스치는 바람결에 이리저리
살랑살랑 나부끼며
웃을까 말까
알려줄까 말까
밀당이라도 하는 것 같은 알리움은
마늘이랑 양파랑 부추랑 자매 사이라서
마늘꽃이라고도 부른다는데요
기다란 기린 목 닮은 꽃대 끝에
수만 개의 별꽃들이 모여 반짝이는
어린아이 주먹 만한 보랏빛 미러볼인 듯
키 훌쩍 크고 꽃송이도 커다란
신비롭고 매혹적인 꽃 알리움에게
알려줄 수 있겠니?
뜬금없이 묻습니다
내 친구가 있거든
나는 준 게 없는데
그 친구는 받았다고 해
그 친구는 내게 꾹꾹 눌러 담은
마음을 주고 또 주면서
준 게 없다고 해
알리움아
알려 주겠니?
고맙고 미안하다고
건네고 싶은 마음 전하는 법을
너는 아니?
안 알랴줌~
바람에 나부끼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보랏빛 알리움이 소곤댑니다
이미 오고 간 마음인데
마음을 건네는 법이 굳이 필요하니?
이미 주고받은 사랑인데
사랑을 전하는 법이 더 필요할까?
준 것은 아련히 잊고
받은 것만 또렷이 기억하는
사랑의 셈법은 저마다 달라서
보랏빛 향기로 오고 가는 잔물결은
막을 수도 없고 뿌리칠 수도 없는 거야
이미 나눈 사랑
그것으로 충분하고
그저 고이 간직하는 마음이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지 않니
사랑해서 고맙고
사랑하니 미안해지는
그것이 사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