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판타지 019 삼색버들의 솔직함

바람의 옷소매

by eunring

어쩔 건데

영원한 사랑이야?

아님 영영 이별인 거야?!

차분하면서도 심장을 콕 찌르는 듯한

버들아씨의 목소리가 나를 향해 다가왔어

평소의 버들아씨 같지 않아서

금사빠 바람인 나

잠시 허둥지둥~


무늬버들이라고도 하고

화이트핑크셀릭스라고도 불리는

삼색버들이 급하게 손짓을 하고 있어

손톱에 핑크빛 매니큐어를 바른 듯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이는데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걸까

낮고 야무지면서도 단호한 목소리야

버들아씨라는 애칭과는 어울리지 않아


나를 필요하다고 부르는 곳이라면

무조건 맨발로 달려가는

바람 중의 의리바람인 나는

금사빠라고 쓰고

오지랖이라 읽기도 하지


더구나 꽃말이 솔직함인

삼색버들의 손짓에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가곤 해

봄날 새순이 유난히 싱그럽고

분홍 이파리가 꽃보다 화사한 그녀는

눈부신 햇살을 좋아하는 투명함이

사랑스럽고 매력적이거든


처음 돋아날 땐

발그레한 연분홍이다가

우윳빛깔 감도는 하양이다가

연두에서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차분하고 예쁜 나무거든

수채물감이 번지듯

얼굴빛을 달리하지만

우아한 분위기에 세련된 손짓까지

은은하고 수다스럽지 않아서

백퍼 믿을만한 나무거든


냉큼 달려가 무슨 일이냐 물으니

핑크소녀 영영이 때문이래

며칠 동안 핑크리본 원피스를 입고

핑크 나무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더니

오늘은 보이지가 않더래


그런데 바로 조금 전

앙증맞은 핑크 캐리어를 끌고

슬픈 발걸음으로 지나갔다는 거야

눈꼬리에 눈물자국이 번져 있더라는 거야

쪼꼬미가 쪼꼬미 캐리어를 끌고 가는

뒷모습이 몹시 애잔해 보이더라는 거야


오지랖을 거침없이 활짝

날개처럼 펼치고 날아올랐지

요즘 애들은 사춘기가 빠른가 봐

어린것이 벌써부터 가출이라니


휘리릭 날아올라 여기저기 살펴보니

영영이가 저만치 또박 걸음으로

바람의 언덕을 오르는 게 보였어

핑크소녀답게 핑리본 원피스를 입고

핑크 캐리어를 끌고 가는 뒷모습이

문득 오래전 기억을 떠오르게 했지


사춘기 시절 집 나가 개고생 중

낯선 우주에서 길을 잃고

떠돌이 바람이 되어 헤매다가 만난

짙푸른 이미지의 우주 미아 소녀

이름이 무어냐 물었더니

모른다는 대답이었어


이름도 모른다 성도 모른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어쩌다 여기 오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모른다는데

이를 어쩔~


여긴 어디 난 누구

마치 그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우주 떠돌이 미아 소녀를

하마터면 미소라고 부를 뻔했지

성은 우 이름은 미소

그러다 아차 싶었어

나까지 우주 떠돌이 바람

우떠바가 되면 안 되는 거잖아


그리하여 잠시 잔머리를 굴리다가

소녀의 옷소매에 수 놓인 푸른 꽃들이

잔잔히 빛나는 별꽃 같아서

푸른별꽃아기라고 부르게 되었던 거야

그때 그 소녀의 모습이

딱 지금의 영영이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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