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판타지 020 우연한 만남

핑디와 영롱 할머니

by eunring

핑크리본 원피스를 입고

핑크 캐리어를 끌며

영영이는 강가햇살 공원으로 가는

바람의 언덕을 오르고 있어요


야트막한 언덕이지만

캐리어까지 끌고 있는

작고 어린 영영이에게는

오르막이 버거울 듯도 한데

바람의 언덕을 지나자마자 바로

햇살 쨍한 강가햇살 공원이라서

영영이는 종종걸음으로 힘을 냅니다


영영이의 발걸음을 반기듯이

딩딩동동 피아노 소리가 울려옵니다

강가햇살 공원 앵두나무 아래에는

낡은 피아노가 하나 놓여 있어서

누구나 아무 때나 마음대로

딩동댕동 피아노를 칠 수 있거든요

아직 피아노를 배우지 않은 영영이도

가끔 건반을 딩동거립니니다

도레미 도레미 도레미파솔라시도~


사랑스러운 아이

핑디라 불러도 되겠니?

피아노를 치던 은발의 할머니가

가까이 다가서는 영영이를 보고는

다정히 웃으며 말을 건넵니다

앵두알처럼 똘망똘망 사랑스러워서

핑디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싶다고

피아노 할머니가 말합니다


영영이는 맑은 눈으로

피아노 할머니를 바라봅니다

이름을 묻지도 않고

대뜸 핑디라고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영영이에게

피아노 할머니가 웃으며

손을 내밉니다


물론 부모님이 지어주신

예쁜 이름이 있겠지

그런데 난 핑디라 부르고 싶구나

이름은 내가 너를 부르는 거니까

그리고 우리는 스치듯 만났으니

내가 부르고 싶은 애칭

핑디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핑크리본 원피스에 핑크 캐리어

사랑스러운 핑크레이디

나만의 핑디~


핑디~

핑크 레이디

귀여운 애칭인데

분홍 숙녀라니 사랑스럽고

어른스러운 느낌도 살짝 들어

영영이도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태명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태명 대신 애칭을 갖게 되어 기뻐요

저도 피아노 할머니를

영롱 할머니라고 부를래요

그래도 될까요?

나만의 영롱 할머니~


영롱? 왜 영롱이냐고 묻자

영영이의 대답이 깜찍합니다

할머니의 피아노 소리가

빗방울 구르듯 영롱해서요

빗방울 톡톡 영롱 할머니~


피아노 할머니가 지그시

영영이를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립니다

곱던 장미 하염없이 시들어가면

수국이 수줍게 피어나기 시작하고

수국과 함께 꾸무럭 장마가 몰려오거든

그래서 '빗방울 전주곡'을 두드려 본 건데

핑디 귀에 영롱한 빗방울 소리가 들렸구나

쇼팽의 24개의 전주곡 중에서

15번째 전주곡의 애칭이 빗방울이야

왼손의 반주가 빗방울 소리처럼 반복되거든

그런데 영롱이라는 말을 아니?


그럼요~

영영이가 또랑한 목소리로 답합니다

빛이 눈부시게 찬란하거나

맑고 아름답게 울리는 소리를

영롱하다고 하는 거죠?

제가 앵두알처럼 똘똘하거든요

그리고 동생이 있다면

영롱이라고 부르고 싶어서

국어사전을 찾아봤어요


그랬구나~

영롱 할머니가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핑디 넌 귀가 활짝 열려 있구나

귀가 열린다는 말

그건 네가 들을 줄 안다는 거야

피아노 칠 줄 아니?

아직 배우지 않았으면

나중에 할머니한테 배워볼래?


정말요?

영영이의 얼굴이 환해집니다

핑디와 영롱 할머니의 만남은

우연한 만남이었으나

세상 모든 만남이

우연이 아님을

우린 알아요 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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