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판타지 029 느려도 괜찮아

거북이의 꿈

by eunring

아빠 아빠~

영영이가 뛰어들어오며 소리칩니다

우리 정원 거북이 조각 바로 앞에

맑고 고운 하얀 꽃이 피었어요

처음에는 바람에 날아온

하얀 비닐봉지인 줄 알고

치우려고 하다가 다시 보니

예쁜 꽃이지 뭐예요


그랬구나

하얀 꽃이 피었구나

우리 영영이 눈에

고운 하얀 꽃이 잠시

하얀 봉지로 보였구나


비닐봉지가 아니라

하얀 꽃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비닐봉지는 되도록

쓰지 말아야 한대요

어쩔 수 없이 꼭 써야 할 때는

하얀 봉지 말고

까만 봉지를 써야 한대요

왜인지 아세요 아빠?


왜 그럴까?

눈먼 이가 영영이를

이윽히 바라보며 말합니다

아빠 생각에는

투명한 하얀 봉지가

속을 알 수 없는 까만 봉지보다

더 나을 것 같은데~


그 이유는요 아빠~

영영이가 맑은 눈을 빚내며

사랑스럽게 말을 이어요

하얀 비닐봉지들이

흐르는 강물 따라 바다로 흘러가면

거북이가 먹이인 줄 알고 먹다가

그만 목에 걸려 캑캑거린대요


그런데요 아빠~

엉금엉금 꼼지락꼼지락

느림보 거북이도

꿈이 있을까요? 있겠죠?

요즘 제가 꿈에 꽂혔거든요


우리 집 정원 말고

내 친구 정원이의 꿈은 시인이래요

노랫말을 쓰는 시인이 되고 싶대요

선생님이 정원이의 시를 읽어주셨어요

제목이 느림보인데 참 잘 썼다고

선생님이 칭찬을 해 주시고

친구들이 정원이에게

우정상을 주기로 했는데요

그 상의 이름이 뭔지 아세요?

윤동주상이래요~


거북이는 엉금엉금

나는 꼼지락꼼지락

사람들은 나를

느림보라 부른다~


그렇게 시작하는 시 속에서

스스로 꼼지락쟁이 느림보라는

내 친구 정원이는 생각이 깊고

마음씨 너그러운 참 좋은 친구예요

물론 얼굴도 보송보송

희고 예쁜 친구죠

아빠도 정원이를 만나면

괜찮다고 말해 주세요

괜찮아 조금 느려도 괜찮아~


그러자고 눈먼 이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리 집 정원 말고

영영이 친구 정원이를 만나면

느릿느릿 느려도 괜찮다고 말해 주자

꼼지락꼼지락 느리다는 건

자신을 들여다보는 생각의 깊이와

주변을 두루 돌아보며 살피는

차분함과 여유가 있다는 거니까

괜찮고 오히려 좋은 거야

그럼 우리 영영이의 꿈은

대체 뭘까?


제 꿈은요 아빠~

잠시 머뭇거리다가

영영이가 말합니다


제 꿈은요

엄마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의 빨강 의자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고 싶어요

아빠랑 나란히 앉아서

파란 하늘도 보고 하얀 낮달도 보고

흰구름이 흘러가는 것도 보고

꽃이 피는 소리랑 새소리

그리고 금사빠 바람이 살며시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소리도

귀 기울여 듣고 싶어요


영영이가 엄마가 되어

엄마의 빨강 의자에 앉으면

엄마가 돌아와서 어디에 앉지?

눈먼 이의 물음에

영영이가 잠시 생각하다가

배시시 웃으며 답합니다


영영이가 다시 영영이가 되어

영영이의 핑크 의자에 앉으면 되죠

그러니까 아빠

우리 엄마에게도

괜찮다고 말해 주세요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좀 늦어도 된다고

느린 걸음으로 꼼지락꼼지락

천천히 와도 된다고

영영이와 아빠가 이렇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으니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또박 걸음으로

언제든 우리 곁으로

오기만 하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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