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86 일 포스티노

사랑의 메신저

by eunring

메신저백이라는 게 있다

아프기 전

힘 좀 있었을 시절에는

큼직한 메신저백을 좋아했다

메신저백에 이것저것 집어넣고 다녔다

지금은 메신저백을 어깨에 매지 않는다

어깨에도 멘탈이 있다면

내 어깨는 유리 멘탈처럼 약하다


어깨에 매지 않는 대신

메신저백에 이런저런 소지품들을 넣어둔다

스카프를 찾으려고 메신저백을 열었는데

철 지난겨울 장갑이 얌전히 들어 있다

나와 내 친구 사이에

소소한 행복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멋쟁이 청년이 선물해준 장갑을

메신저백에 잘 갈무리해 두었다


메신저라는 말을 좋아한다

로맨틱한 달빛 아래 정인들을 맺어주는

월하노인 같은 사랑의 메신저

기쁘고 행복한 소식을 전해주는

비둘기 같은 메신저~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나는

메신저가 되어본 적이 없다

지혜로운 전달자

메신저가 되기에는

어깨 못지않은 유리 멘탈이다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시와 은유에 대하여 배우는

마리오의 새롭게 빛나는 일상이 좋다

섬의 아름다움에 대한 물음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답한

우문현답 마리오가 좋다


마리오가 네루다의 짐을 부쳐주며

녹음기에 녹음을 해서 함께 보낸

바다의 작은 파도와 큰 파도 소리

절벽의 바람 소리

나뭇가지에 부는 바람 소리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신부님이 치시는 교회의 종소리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그리고

베아트리체의 뱃속에 있는

아들 파블리토의 심장 뛰는 소리

그 소리들이 좋다

그 소리들이

세상 모든 시보다 아름답다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향하여

휴대전화 녹음 버튼을 누르면

별들이 반짝이는 소리가 스며들까


바람의 푸른 옷소매 자락에

사라락 풀잎 스치는 초록빛 소리가

덤으로 스며드는지

오늘 밤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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