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68 마음을 그리다
마음을 그리다
학생 시절 미술시간이 좋았다
내 마음대로 뭔가를 그리는 게 좋았고
자유로운 영혼의 미술 선생님도 좋았다
미술 선생님이 내 스케치를 보고
미술대회 추천을 해 주셨는데
색칠하면서 다 망쳐버렸다
나중에
그림을 배워보려고 했을 때
4B연필 깎는 법부터 배우고
연필 잡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2절지 널찍하고 큼직한 스케치북에
사각사각 선 긋는 연습부터 했는데
상아색 부드러운 종이 위에 사각사각
연필 스치는 소리가 좋아서
선긋기 연습이 즐거웠다
바람의 발자국 소리 같기도 하고
금빛 햇살 스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나뭇잎들이 사각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마음에 그리움 스치는 소리 같아서
좋았다
손목에 힘이 들어가면
거친 바람소리가 그려지고
마음이 여유로울 땐
연필 스치는 소리도 느긋해지면서
부드럽고 유연한 선들이 그려졌다
종이 위에 선긋기는
마음에 사각사각 선긋기였다
종이 위에 선을 그리는 것은
마음에 하나둘
그리움을 그려가는 것이었다
선을 긋고
그 선들을 이어가며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마음을 그리는 것이었다
생각 속에 머무르는 그리움을
마음에 그려내는 것이었다
지금도
종이와 연필을 보면
무언가를 그리고 싶다
새하얀 종이 위에
바람의 발자국 닮은
사각거리는 그리움을 그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