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186 카르페 디엠
영화 '어답트 어 하이웨이'
웃는 모습이 고운 친구님의
프사 상태 메시지가 '카르페 디엠'입니다
지금 여기에 몰입하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는 의미죠
1990년 영화'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수줍고 소심한 전학생 토드를 연기하던
앳된 겁쟁이 소년 에단 호크가
책상 위에 올라서 자신감 뿜뿜 외치던
'오 캡틴 마이 캡틴'을 떠올리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마에 가득한 고단한 주름과
덥수룩한 수염을 매달고 묵묵한 표정으로
불안하고 외롭고 조심스럽게
주인공 러셀을 연기하는 에단 호크를 보며
영화 '어답트 어 하이웨이' 속에도 존재하는
카르페 디엠을 생각합니다
영화의 제목인
'어답트 어 하이웨이'를 직역하면
고속도로 입양이라는 뜻으로
고속도로 후원사업이랍니다
자원봉사 단체가 고속도로의 일정 구간을 입양이라도 하듯이 맡아 쓰레기 청소 등
깨끗한 고속도로가 되도록
유지 관리하는 것을 뜻한다고 해요
저지른 잘못에 비해 21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을 복역하고 출소하자 44세
변해버린 세상이 온통 낯설기만 한데
가석방 기간 중이라 이메일 보고를
주기적으로 해야 하므로
더듬더듬 인터넷을 배워 이메일 주소도 만들고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희망도 없이 혼자 외롭게 지내던 러셀이
쓰레기통에서 아기천사 엘라를 발견합니다
우는 엘라를 달래고 노래도 불러주며
보살피는 러셀의 아빠미소가 애잔해요
'널 데리고 바닷가에 가서 하루를 보낼까'
거울 앞에서 아기 엘라를 안고
바다에 놀러 갈까 묻는 모습이
쓸쓸하고 또 쓸쓸합니다
아기천사 엘라를 안고 바다를 바라보며
우표 수집이 취미였던 아빠의 이야기를
중얼거리듯이 들려주는 장면이 뭉클합니다
잔잔한 슬픔의 파도가 푸른빛으로 밀려들어요
아빠와 나눈 우표의 추억을 중얼거리다가
어떤 동물을 좋아하니 묻기도 하고
잠자리에서는 다정히 책을 읽어주기도 해요
'우리의 내면에는 빛과 어둠
그리고 선과 악이 함께 존재하는데
중요한 건 우리의 선택이고
그것이 우리를 결정한다'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듯 읽어줍니다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한 그가
아기 엘라를 정성껏 돌보다가
이마를 바닥에 부딪친 엘라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갔다가 경찰과 아동 복지국 직원에게
엘라를 발견하게 된 경위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됩니다
일하는 가게 뒤 쓰레기통에서
아침 일찍 아기 울음소리가 났고
엘라는 엘라라는 이름이 적힌 쪽지와 함께
가방 안에 들어있었다며 우는
그의 모습이 안타까워요
아기 유괴범으로 의심받게 되어
아기천사 엘라와 일자리마저 잃은
그는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오릅니다
가석방 기간 중인데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를 떠나는 버스에 탄
그의 모습이 한없이 불안해 보이지만
현실 적응이 쉽지 않은 그의 불안까지도
소란하지 않고 잔잔하게 흐릅니다
잃어버린 버스표 때문에
버스에 타자마자 우는
스물다섯 살 여자 다이에게
눈물 닦을 티슈를 건네기도 하고
겨자 마요네즈 샌드위치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음료수를 나눠 마시기도 하고
어깨를 빌려주기도 하며
러셀은 자신을 소개합니다
와이오밍주 캐스퍼 출신 러셀 44살
빨강을 좋아하고 별자리는 전갈자리
버스에서 만난 여자를 통해 서툴지만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합니다
고향에 도착한 그는
부모님 묘소 앞에 너무 오래 걸렸다고 하죠
인생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며
주저앉아 엄마에게 하소연도 해 봅니다
자신과 죽어라 싸운다고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미안해요 아빠 '아빠에게 사과도 하죠
'제 부모가 되어주셔서 감사해요'
감사의 인사도 덧붙입니다
주름진 이마와 덥수룩한 수염에
노란 후드티를 입은 그는
아빠가 남긴 열쇠를 들고 안전금고를 찾아갑니다
금고 인에는 노란 봉투에 담긴 아빠의 손편지와
어린 아기였던 러셀을 안은 엄마와 아빠
다정한 가족사진이 들어 있어요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널 가두는 벽을 넘어서면
아들아 네가 보인다
11월 늦가을 오후에 태어나
내게 사랑하는 법을 알려준 아이
넌 나의 영원한 아이란다'
한 번도 널 잊은 적이 없다는
아빠의 사랑이 담긴 따뜻한 편지와 함께
우표 한 장과 창고 열쇠가 그에게 용기를 건넵니다
'불운했던 시간들을 돌아보지 말고 살아
달이 늑대를 사랑하듯이 널 사랑한다
아들아 집에 잘 돌아왔어'
창고 안에는
어린 러셀의 우표수집책과 함께
지난시절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아
그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넵니다
3개월 후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엘라를 만나러 온 그는
쉽지 않지만 입양 절차를 알아보고 있다며
엘라의 18세 생일에 전해주라고
신탁증서를 맡깁니다
봉투는 비닐에 싸서 보관해 달라고 부탁하죠 우표가 상하지 않게~라고 덧붙이는
러셀의 모습이 훈훈합니다
에단 호크니까요
아기천사 엘라에게서
삶의 의미와 희망의 꼬투리를 찾았듯이
그리고 다정한 아빠의 손편지에서
인생의 이정표를 보았듯이
미래의 소녀 엘리를 위해
희망을 신탁하는 그의 모습이
더는 외로워 보이지 않아서
마음이 놓입니다
어디론가 떠나는 그에게
차표를 파는 창구 직원이 행선지를 묻자
대답 전에 입꼬리에 매다는 싱긋 미소로
마무리하는 엔딩이 밝아서 매력적입니다
어쩌면 까르페 디엠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자 웃다가
버스에서 만나 어깨를 빌려준
그녀를 만나러 나선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의 행선지가 어디든
훈훈한 미소와 함께 하는
그의 걸음걸음을 격하게 응원합니다
카르페 디엠을 늘 기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