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342 모두가 사랑이다

사진 속에 머무르는 사랑

by eunring

학교 다닐 때 반장은 해 본 적이 없다

줄반장도 해보지 못했다

수줍음이 많고 말수도 적어서

내 목소리 들어본 적이 없다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래도 대장은 했다

동네 골목대장은 물론 아니고

사과를 좋아해서 사과 대장

고구마를 잘 먹어서 고구마 대장

고구마순이가 아니고 대장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드라마를 보다가 답답한 구간을

고구마 구간이라고 한다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속이 답답해서

한마디로 속이 터진다는 건데

내가 좀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나도 톡 쏘는 사이다처럼 쿨하고

속 시원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타고 난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나도 어딘가 쓸모 있는 사람이려니

스스로 다독다독 위로하며 산다


살림 마트에 갔다가

고구마순 한 봉지를 집어 든 것도

아마 어릴 적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껍질 벗겨내기 번거로워

껍질 벗겨 데쳐놓은 걸 사다 먹는데

고구마순 봉지와 눈이 마주치고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릴 적 고구마순 한 다발 앞에 두고

엄마랑 동생들이랑 껍질을 까던 생각이 났다

그 시절 고구마순 한 다발은 엄청 크고

고구마순은 붉은빛이 진했다


놀이 삼아 고구마순 껍질을 까다가

까매진 손톱 끝을 서로 내보이며

까르르 웃는 철없는 우리를 위해

엄마는 고구마순 볶음이랑

고구마순 김치도 만들어 주셨다


솜씨가 아주 좋은 편은 아니셨으나

가끔 엄마 솜씨가 그립다

습관처럼 김치를 담그신다고

딸들에게 구박도 받으셨지만

모두 다 사랑이었다


엄마가 힘들게 김치를 담그시던 것도

딸들이 김치 그만 담그시라고

어리광 섞인 타박을 했던 것도

모두 다 사랑이었다


이제 김치는 맵다고 드시지도 않는

엄마는 김치 담그는 법도 잊으셨다

솜씨도 없는 내가 고구마순 한 봉지

앞에 두고 느리게 껍질을 까는 것도

자줏빛 껍질이 무어 그리 대단한 거라고

사진으로 찍어보는 것도

지난 기억 속에 머무르는

아련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를 위로하다 341 당신의 사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