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237 느림과 기다림과 설렘

파헬벨 '캐논'

by eunring

서랍장에 예전 필름을 넣어 찍던

캐논 카메라가

얌전히 들어 있습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찍거나

DSLR 카메라로 찍으니

필름 카메라는 그저 바라보며

필름을 갈아 끼울 때의 설렘과 소리와

손의 느낌을 추억할 뿐~


파헬벨의 '캐논'과 필름 카메라 '캐논'

전혀 다른 둘 사이의 공통점이 무얼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음악과 필름 카메라 둘 사이는

서로 다르지만 또한 비슷합니다

느림과 기다림과 설렘이 있으니까요


필름 카메라에 필름을 끼우고

찰칵찰칵 사진을 찍고

인화해서 사진첩에 꽂아두고

가끔씩 꺼내 보는 아날로그 감성을

파헬벨의 '캐논'을 들으며 느껴봅니다


음악적 규칙의 엄격함이 주는

'캐논'의 반복적인 편안함과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화음으로 이어지는

차분하고 편안한 멜로디를 듣다 보면

잔잔한 슬픔이 느껴집니다

파도치는 바다의 슬픔이 아니라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슬픔이랄까요


원곡은 요한 파헬벨의

'세 대의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을 위한 캐논과 지그'로

캐논과 지그 두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앞부분인 캐논만 따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아

파헬벨의 '캐논'으로 알려졌답니다


그의 작품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베를린 시립도서관에 남아 있던

'캐논' 필사본이 200여 년만에 출판되어

거의 300년이 지나서야 대중에게 알려지고

여러 악기의 버전으로 다양하게 편곡되어

사랑받는 곡이 되었답니다


법과 규칙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온

'캐논'은 바로크 시대 많이 쓰인 연주기법으로

같은 멜로디가 시간차를 두고

변화하고 반복하며 흘러가는

돌림노래 형식을 뜻한다고 해요


음악의 아버지 바흐에게도 영향을 준

요한 파헬벨은 17세기 후반 바로크 시대

독일의 작곡가이며 오르간 연주자로

바흐의 아버지와도 인연이 있었고

바흐의 형인 오르간 연주자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의 스승이기도 했다죠

바흐 형의 결혼식에서 연주하기 위해 만든

곡일 거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답니다

추측은 추측일 뿐~


'캐논'의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 노래하는

리베라 소년 합창단의 'Sanctus)도

맑고 신비스러워 듣기 좋고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연주로 듣는

'캐논 주제에 의한 변주곡'도

차분하고 여유롭고 우아하고

편안해서 매력적입니다


오래전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

여주인공의 피아노 연주 장면에도 나왔었고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는

주인공들의 밴드 합주로도 등장했어요


맑은 날은 해맑은 마음으로

흐린 날은 회색빛 멜랑꼴리한 감성으로

비 오는 날은 빗소리에 기대어

개운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울적함을 달래기에 좋은

캐논을 들으며 마음을 다독다독~


약속의 설렘도 아껴두고

만남의 기쁨도 잠시 미루고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건

설렘의 눈부심이 아니라

시간의 주머니에 고이 간직한

느림과 기다림이니까요


300년이라는 기다림 끝에

사랑받는 명곡이 된

파헬벨의 '캐논'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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