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482 연애편지
사랑은 일편단심
9살 어린 소년 정몽주의
연애편지 대필 솜씨 좀 보실래요?
여종이 어린 도련님에게 머리 조아리며
연애편지 한 장 대신 써 주십사 부탁했더니
'구름은 모였다가 흩어지고
달은 찼다가 이지러질지라도
첩의 마음은 변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일편단심 연애편지를 대신 써 주었다죠
여종이 편지가 너무 짧다며
몇 줄 더 청하자 이렇게 덧붙여주었대요
'이미 닫은 봉투를 다시 열고
한 말씀 더 보탭니다
세상에 병이 많다 하더니
이게 바로 상사병인가 봅니다'
어린 소년이 참 맹랑하고 대견하죠?
고려 말 충신으로 이름을 남긴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는
어릴 적 연애편지를 대필해줄 때부터
그 뿌리가 깊고도 단단했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냐는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한 답으로
일백 번 고쳐 죽어 넋이 있든 없든
임 향한 일편단심은 변하지 않는다는
'단심가'로 답하는데요
9살 소년일 때나 어른이 되어서나
사랑은 일편단심이라고 믿으며
뜻을 굽히지 않은 정몽주의 이름은
어머니의 꿈으로 몇 번 바뀌었답니다
어머니의 태몽이 난초 꿈이어서
어릴 때 이름이 몽란이었다는데요
꿈에 난초 화분을 품에 안고 있던 어머니가
난초 향기를 맡다가 화분을 떨어뜨려
화분은 산산조각이 났는데
난초의 그윽한 향기는 멀리 퍼져나갔답니다
그래서 몽란이라 불렀고요
9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용꿈을 꾸어 몽룡으로 바꿔 불렀대요
검은 용이 배나무에 올라가는 꿈에서 깨어나니
배나무에 정몽주가 올라가 있는 걸 보고
특별한 아이라 생각해서 몽룡으로 바꾸었답니다
어른이 된 후에는 몽주라고 불리게 되는데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셨나 봅니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시조를 지어 아들을 염려하기도 하셨대요
시조 '백로가'의 지은이가
정몽주의 어머니가 아니라
작자 미상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정몽주의 일편단심은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것이 분명합니다
'옳은 일을 행하고
의리는 반드시 지키라'라고 가르치신
그 어머니에 그 아드님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