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487 햇땅콩 흙내음
햇땅콩 추억 레시피
가을 햇땅콩 한 봉지를 샀습니다
껍질째 볶은 땅콩은 사서 먹어봤지만
볶지 않은 생땅콩은 처음입니다
껍질째 삶거나 볶아 먹어도 좋다지만
일단 쟁반에 쏟아놓고 껍질을 까 봤어요
땅에서 나는 콩이라 땅콩
땅 속에서 열매를 맺는다고 해서
낙화생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땅에서 나온 열매라 그런지
껍질에 묻은 흙냄새가 보드랍고
오랜만에 맡아보는 흙냄새가 아련하게
어릴 적 추억을 불러일으킵니다
라떼는~^^
동네 친구들과 골목에 모여 놀았었죠
줄넘기랑 고무줄놀이도 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땅따먹기 놀이도 하고
동글동글 이쁘고 쪼매난 돌멩이 쌓아놓고
신나게 공기놀이를 하느라
손톱에 흙이 묻어 까맣게 되었어요
햇땅콩에 묻은 흙먼지 때문에
어릴 때처럼 손에 흙이 묻고
생땅콩 껍질이 생각보다 질겨서
껍질을 까기가 쉽지 않았어요
볶은 껍질 땅콩은
바스락거리며 잘 부서져서
먼지는 폴폴 날려도 껍질 까기는 쉬운데
생땅콩 껍질을 까다 보니
손끝이 아파서 대략 난감~
그래도 이왕 시작한 일이니
다는 못 해도 절반은 해야죠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었더니
몇 개 까기도 전에 비닐장갑이 터져서
고무장갑을 끼고 간신히 절반을 깠습니다
절반은 껍질째 깨끗이 씻고
절반은 알맹이만 깨끗이 씻어서
쨍한 가을볕에 잠시 말렸다가
레시피 따지지도 묻지도 말고
볶아 먹든 삶아 먹든 졸여 먹든
환상의 짝꿍이라는 오징어와 함께 먹든
기분 따라 내키는 대로 해 보려고요
서툴고 게으른 나에게는 금손 대신
편리한 에어프라이어가 있으니
껍질 땅콩 달달 볶는 일은
에어프라이어님께 맡겨드리고
천연 건강식품 땅콩의 고소함 누릴 일만
알알이 즐거운 내 몫으로 남은 셈입니다
생땅콩 껍질 까는 건 처음이라
손끝은 아프지만 보드랍고 섬세한
흙내음 맡으며 눈부신 가을볕 옆구리에 끼고
철없는 어릴 적 추억도 꺼내보면서
느릿느릿 땅콩 껍질 까는 오후 시간이
보드라운 흙내음처럼 정겹고
나른하고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