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536 가을을 읽다
책이 주는 달콤한 평온
'배움에 대한 애정과
세상을 등진 외딴곳
책이 주는
그 모든 달콤한 평온'이라고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가 말했답니다
롱펠로는 19세기 미국의 시인이죠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하기 전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전학을 가게 되었을 때
쓸쓸한 마음 안고 시내 서점에 가서
친구를 위한 책 한 권을 골랐습니다
작고 네모난 자줏빛 책으로 기억하는데
롱펠로의 장편 서사시 '에반젤린'이었습니다
어리고 철없던 나이에
'에반젤린'의 내용도 잘 모르면서
그 책을 선뜻 고른 이유를
지금도 알지 못합니다
어떤 책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한 권의 책 속에 담긴 글자 수만큼
책을 안고 돌아오며 바라본 밤하늘의 별만큼
친구와의 작별이 아쉽고 안타까웠을 테죠
나중에 '에반젤린'을 읽으며
아카디아 그랑프레 주민들이
영국군에게 강제 이주를 당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에반젤린과 가브리엘의
슬픈 사랑 이야기임을 알았습니다
그랑프레 농부의 딸 에반젤린과
대장장이의 아들 가브리엘이
오누이처럼 다정히 지내다가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결혼하게 되는데
하필이면 바로 그날 영국군이 들이닥쳐
아카디아 주민들을 추방하게 되자
가브리엘과 에반젤린도 헤어지게 되죠
에반젤린이 수십 년 동안
애타게 가브리엘을 찾아 헤매지만
안타깝게도 만나지 못하다가
죽어가는 가브리엘을 만나게 됩니다
그토록 비극적이고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전학 가는 친구에게 선물한
어린 시절의 철없음이
문득 웃퍼집니다
해맑은 하늘에 빗질이라도 한 듯
고운 흰구름 나풀대는 계절
눈부신 햇살 끌어안고
책 읽기 좋은 여유로운 가을날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롱펠로의 '에반젤린'을
다시 읽어볼 생각입니다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자리에 앉아
바람의 발자국 소리에 화음을 얹듯이
낮은 소리로 느리게 읽어도 좋을
한 권의 책 '에반젤린'
'아름답던 농장들은 황폐해지고
농부들은 영영 자취를 감추었다
시월의 찬바람이 먼지와 나뭇잎들을
휘감아 하늘 높이 끌고 올라가
멀리 바다 위에 뿌리듯이
그들은 산산이 흩어져 버리고
다만 아름다운 그랑프레 마을의
전설만이 남아 있을 뿐'
그렇게 시작하는
에반젤린과 가브리엘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달콤한 평온 대신
씁쓸한 아픔을 주더라도
괜찮습니다
세상을 등진 외딴곳이 주는
적막하고 고독한 행복을
한 권의 책 속에서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