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685 가을은 어른스럽다

천천히 걷는 인생

by eunring

비 오는 가을날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동네 골목길을 걷다가

'천천히'라는 글자를 만났어요


골목길이니 천천히 달리라고

자동차들에게 건네는 말인데요

비가 오고 바람도 불어대는

가을에게 건네는 말 같기도 하고


비가 오고

바람도 불어대는 길을

우산 쓰고 걷다 보니

저절로 걸음이 빨라지는

나에게 던지는 말 같기도 하고


저무는 가을 따라 걸음을 재촉하는

인생에게 던지는 한마디 같기도 합니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하루해가 짧아져

어둠도 금방 내려앉고 저녁도 금방 오고

인생도 종종걸음으로 달아나는 것만 같아요


이렇게 겨울도 금세 다가오겠죠

기온도 뚝 떨어져 추워지겠죠

나이도 또 한 살 얹히겠죠

인생도 묵직해지겠죠


천천히~

라고 중얼거려봅니다

가을도 천천히 가고

겨울도 천천히 오고


한해도 천천히 저물고

인생도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라고 말하면

가을이 어른스럽게 웃으며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속도는 다만 느낌일 뿐

또박또박 시간의 발자국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거라고

차근차근 인생의 발걸음도

누구에게나 어김없는 거라고

가을이 허허 웃어요


시간도 인생도 훌쩍 건너뛰지 않고

성급하게 앞서 가는 법도 없고

느릿느릿 덜 가는 법도 없고

거꾸로 가는 일은 더구나 없으니

걱정 단단히 붙들어 매라고

저 혼자 어른인 듯

가을이 너털웃음을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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