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844 감성의 전설
영화 '가을의 전설'
오래전 봤던 영화를 다시 봅니다
눈 쌓인 겨울 한복판에서
'가을의 전설'을 만납니다
음악이 좋고 화면에 차오르는
대자연의 풍광이 아름답고
내면에 곰의 울부짖음을 끌어안은
브래드 피트의 거칠고 순수한 감성과
늦가을에 태어나 바람처럼 방황하는
그의 인생이 안타까워서
다시 몰입합니다
맏이 알프레드와 막내 사무엘
그리고 둘째 트리스탄
세 아들을 전쟁터로 배웅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애틋하죠
떠나가는 자식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눈빛은
대배우 안토니 홉킨스의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인디언의 딸
반은 땅다람쥐 반은 매
그래서 트리스탄이 혼혈이라 부르는
사랑스러운 인디언 소녀 꼬마 이사벨은
나중에 트리스탄이랑 결혼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있죠
아버지처럼 전쟁 영웅이 되겠다는
막내 사무엘을 형들이 보호해 주지만
자원해서 정찰을 나갔다가
철망에 걸려 총을 맞고
트리스탄이 보는 앞에서
비참하게 죽어요
사무엘의 심장만 형 알프레드와 함께 보내고
사무엘이 새를 그리던 협곡에 묻어주라며
트리스탄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눈폭풍에 길이 막혀 수잔나는
보스턴으로 떠나지 못하고 머무르죠
인디언 원 스탭은 그녀를
바위 속에서 어는 물과 같다고 합니다
바위를 산산조각 내더라도
그녀의 탓은 아니라고 하죠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녀가 맘에 들지 않아요
사무엘의 무덤 앞에서 알프레드는
수잔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트리스탄이 돌아옵니다
동생을 구할 수가 없었다며 우는 모습이
애잔하고 절절합니다
수잔나로 인해 알프레드와 트리스탄
두 형제 사이에는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트리스탄에게 수잔나와 결혼하라며
도시로 떠난 알프레드는
농축산 중개인으로 성공하지만
트리스탄은 사무엘을 구하지 못한 자책감으로
인디언 데커를 모욕한 술집 종업원을 폭행하고
내면에서 으르렁대는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채
괴로워하다가 집을 떠납니다
기회를 달라고 영원히 기다리겠는
수잔나를 외면하고 떠난 트리스탄은
떠돌이 사냥꾼이 되어 산다며
책에도 없는 동물들이 있는 곳에서
수잔나에게 다른 사람과 결혼하라는
이별의 편지를 보내죠
알프레드의 사업은 번창하여
하원의원이 되어 수잔나와 결혼하고
트리스탄이 돌아오자
중풍에 걸려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아버지가 목에 건 조그만 칠판에 쓰는
'행복'은 정말 행복해 보입니다
트리스탄도 행복하다고 하고
바라보는 나 역시 행복합니다
꼬마 이사벨은 총명하게 자라
스무 살 아가씨가 되어 트리스탄을 반기고
결혼하고 아기도 낳아
사무엘이라고 이름을 지어줍니다
트리스탄 내면의 곰이 잠잠해진 듯했으나
단란한 가족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하고
오베니언 형제들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이사벨이 안타까워요
원칙을 지키며 살았으나
원칙을 무시하며 살아온 트리스탄보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알프레드의 아픔도
안타깝습니다
트리스탄은 바위 같은 사람이라서
누군가를 보호하려고 하지만
깨뜨리고 마는 바위라고 기억하는
인디언 원 스탭의 회상이
늦가을 바람처럼 쓸쓸합니다
'어떤 이들은 크고 분명하게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죠
그런 사람들은 미치고 말아요
그러나 전설이 됩니다'
그렇게 가을의 전설이 된
트리스탄은 오래 살았다죠
그의 아들 사무엘이 가족을 이루는 것까지도
보았다는 인디언 원 스탭의 독백이
가을의 감성 속으로 차분히 스며드는
'가을의 전설'을 '몰락의 전설'이라 한다지만
나는 '감성의 전설'이라 부르고 싶어요
처음 볼 때보다
다시 보니 더 좋은 영화
가을이 아닌 겨울에 보아도 좋고
음악 좋고 자연의 풍광 아름답고
멋진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고
방랑하는 인생의 아픔이 울림을 주는
다음에 보면 더 좋을 영화
'감성의 전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