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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병태 Aug 02. 2019

A-01. 병원, 고객이 통치한다

의료기관에 대한 환자경험평가 시대가 열리다

2018년 8월 중순 한국에서 처음으로 500 병상 이상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92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환자경험 시범평가 결과가 공표되었다. 


처음 시행된 환자경험평가이므로 환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평가한 것인지 아니면 건물규모나 병원 구성원들의 태도만 보고 평가한 것인지, 의료의 질(質)을 담보로 한 평가인지 단순히 감성적인 기분에 의한 평가인지, 국가의 의료제도나 정책적인 영향으로 평가에 작용하는 변수는 없었는지, 의료전달체계 상의 문제는 없었는지, 건강보험제도나 건강보험수가의 이슈와 상관관계는 없는지, 치료보다 환자경험평가 항목에만 치중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부작용은 없는지 등 다양한 이슈와 후속 과제를 남겼다.                                                                                                                       



의료기관 평가 동향


최근 우리나라 의료기관은 의료기관 평가 인증, 고객만족지수 평가, 의료의 질 평가, 비급여 사용 현황 평가, 의료의 적정성 평가, 일부 대형병원에서 시행한 JCI 평가 그리고 환자경험 평가까지 평가의 홍수 속에 놓여 있다.


이러한 평가는 환자들의 알 권리를 존중하고 의료기관의 수준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향상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평가결과가 여러 가지 언론매체를 통하여 국민들에게 점수와 순위까지 발표됨으로써 일부 측면만을 평가한 결과를 통하여 의료기관을 줄 세우기 하는 부정적인 결과도 낳았다.                

              

                                                                                              



의료기관 운영의 세 가지 축


 의료기관은 무엇에 집중하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각종 평가 지표들인가? 의료의 질(質)을 추구하는 것인가? 수익성을 높이는 것인가? 세 가지 모두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한정된 자원과 국가 통제의 건강보험 수가정책 속에서 수익성도 담보하면서, 의료의 질(質)적 수준도 높이면서 각종 평가 요소들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가지 측면이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의료기관은 바퀴 세 개 달린 자전거처럼 이것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세 바퀴의 역학 관계 속에서 전체적인 방향을 이끌고 진행방향을 잡아가는 앞바퀴의 역할을 무엇으로 결정하느냐가 그 기관의 향방을 결정하고 문화를 구축하며 차별화를 형성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앞바퀴의 역할과 방향에 따라 뒷바퀴는 그냥 해당 기관을 얹어 실려오기만 하기 때문이다.



의료기관은 비영리기관이고 생명을 다루는 기관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의료행위에 대한 관리를 하거나 국가가 직접 평등하게 모든 국민에게 의료혜택을 제공하도록 하는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의료기관의 수익성이 앞바퀴에 오는 경우는 일부 영리 병원 이외에는 없다. 대부분 세 가지 중 의료의 질(質)적인 측면과 각종 평가 요인에 대처하는 정책이 앞바퀴에 위치하게 된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의료의 질(質)에 대한 사항도 평가항목에 포함되기 때문에 전문적인 질(質) 평가는 어렵지만 넓은 의미에서 볼 때 각종 평가항목에 대비하는 정책을 우선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평가 요인 중에서도 2018년도부터 실시된 환자경험 평가는 환자가 직접 유용한 경험을 했는지 평가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정보이다.


이에 따라 최근 의료기관에서는 환자들이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고객만족팀 또는 고객행복팀 등과 같은 실무 부서가 만들어지고, 환자들에게 더 편안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혁신적인 활동 추진을 위하여 이노베이션센터, 서비스 디자인센터, 창의센터와 같은 기구들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환자경험 평가 결과


환자경험 평가가 중요한 경영정책의 화두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2018년에 실시한 환자경험 평가 결과는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서 점수와 순위까지 발표됨으로써 환자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평가 결과 중에서 특기할 사항은 국내 최고 병원이라고 통용되던 빅 5 병원-빅 5 병원은 서울성모병원,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을 일컬음-에 대한 평가 결과가 높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보다 규모상으로 훨씬 적은 대학병원이 더 우수한 성적을 얻은 것이다.


이 결과를 보면, 병원의 규모나 명성에 관계없이 환자들이 느낀 만족도나 경험은 기존의 명성과 다를 수 있으며, 실제 입원하여 생활하면서 느낀 경험은 해당 현장에서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피상적으로는 알 수 없다는 시사점을 던졌다.


[표] 환자경험 평가 ‘빅 5 병원’ 성적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발표자료 분석 재구성)  


환자경험 평가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고객, 특히 의료기관에서의 고객인 환자와 의료기관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고객은 병원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든 지불하는 비용에 해당하는 또는 그 이상의 대우를 기대한다. 병원에서의 기대는 생명과 관련된 기대이므로 더욱 민감한 평가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와 같이 사회보험을 통하여 국가가 관리하는 건강보험제도에서는 모든 국민들이 평등하게 대우받고자 한다. 대통령 공약은 물론 정부 정책들이 국민의 건강한 삶에 대한 보장성 강화를 천명하고 있으므로 국민들은 환자인 동시에 고객이고 건강보험 보험료를 납부하는 주체로서 그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몸이 불편한 고객, 심신이 쇠약해진 고객, 건강보험의 주체인 환자들은 의료기관에서 따뜻한 대우, 평등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나라 병원은 그 어느 곳 보다 차가운 권위가 흐르는 곳이었다. 흰 가운, 하얀색 건물 그리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신호를 보내는 수많은 기계장치들과 감염요인을 차단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제약조건이 있어 그 권위는 더욱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권위는 최근까지 계속되었고 정보의 비대칭성-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진 당사자간에 정보가 한 쪽에만 존재하고 다른 한쪽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으로 인하여 병원의 권위는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



고객이 통치하는 시대


빠른 정보화 사회의 도래와 국민들의 지적 수준 향상 및 고객의 알 권리가 높아지면서 이제 병원도 고객인 환자로부터 평가받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환자경험 평가 결과 1위 병원이 평가에서는 좋은 성적을 냈지만 경영 상태까지 좋은 상황은 아니므로 환자경험 평가 결과가 경영적인 측면에서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폄하하는 주장도 있지만, 그 평가 결과가 정확한 평가인지 아닌지, 평가 요인을 어떻게 정교하게 객관적으로 다듬어 나갈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병원에 대하여 고객이 평가하고 통치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진 당사자간에 정보가 한 쪽에만 존재하고 다른 한쪽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으로 인하여 병원의 권위는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


정부는 2019년부터 300 병상 이상 병원까지 환자경험 평가 대상을 확대하고, 환자경험 평가 항목을 환자의 가치가 존중되고 의료 소비자 관점의 의료 질(質) 향상을 유도하여 국민 건강 증진 및 환자중심 의료 문화 정착에 기여할 수 있는 항목으로 평가를 발전시키겠다고 공표하였다. 환자경험 평가는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 여러 국가에서 환자가 체감하는 의료 질(質) 향상을 위해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실시되고 있는 제도이다. 또한 ‘환자의 긍정적인 경험’과 ‘환자중심 의료’는 환자의 증상을 완화시키고 치료 순응도를 높여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는 등 임상적 효과와 환자 안전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므로 환자경험 평가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고객을 사람답게 인정하고 대우해야


이제 의료기관은 과거의 권위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우월적 지위에서 벗어나 고객인 환자에게 집중하여야 한다. 환자의 경험 평가는 앞으로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던 병원과 접속하는 순간부터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환자경험 평가는 어느 한 접점에서 잘함으로써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각 접점 -MOT(momentof truth) : 결정적 순간이라는 의미로, 서비스 품질관리에서 MOT는 소비자가 회사의 어떤 일면과 접촉하는 접점으로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와 그 품질에 대하여 어떠한 인상을 받는 순간을 의미함- 에서의 평가 요인이 덧셈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곱셈의 법칙으로 작용한다. 즉, 한 곳에서라도 환자경험이 영점(zero)을 맞게 된다면 모든 과정에서의 노력이 영점(zero)이 되는 것이다.


이제 의료기관은 환자 중심에서 환자의 시각으로 환자에게 맞는, 환자 눈높이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환자들이 긍정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혁신을 이루어야 하며 환자를 더욱 소중히 생각하고 사람답게 대우하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진정한 의료기관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제 병원도 고객이 통치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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