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지만 끝내 이해하지 못할

이해하지만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by 은섬


아버지.
유치원에 들어가기도 전 기억인 것 같다. 집 앞 문방구에서 산 디즈니 공주 판박이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 나는 그 예쁜 판박이를 거실 전등 스위치에 붙이고 싶었다. 정말이지 우리 집 벽에 딱 어울리는 신데렐라 스티커다. 백설공주는 내방 벽 스위치에,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안방 벽 스위치에, 인어공주는 화장실 벽 스위치, 미녀와 야수의 벨은 부엌 벽 스위치에. 정말 환상적이지 않은가. 불을 켜고 끌 때마다 공주님들과 눈을 마주칠 수 있다니! 하지만 판박이를 집 벽 스위치에 떡하니 붙이는 걸 허락할 엄마는 없다. 그 아름다운 판박이들이 우리 집을 얼마나 환하게 만들어줄지를 엄마는 모르고 있었다. 엄마가 장 보러 나간 사이 아버지가 살짝이 내 편을 들어준다. "은섬아! 판박이 붙이고 싶어? 아빠랑 같이 붙일까? 어디에 붙일까? 으응, 여기 스위치?" 엄마가 장에서 돌아오고 난 후 벌어진 일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짐작한 그대로다. 언제나 내편이었고,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주고, 해바라기 씨를 까서 먹여주고, 생선가시를 발라주던 아버지를 나는 사랑했다.

그렇게 사랑하는 아버지였지만 내 기억 속 아버지는 거기까지다. 유치원에 들어 간 이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어쩌다 집에 들어올 때면 잠만 자던 뒷모습뿐이다. 엄마는 아버지가 들어오지 않는 밤이면 나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 밤새 서성였다. 가장의 부재에 지새우는 불면의 밤. 아버지와 엄마는 큰소리 내며 싸우는 일이 잦아졌고, 그런 일이 있고 나면 어김없이 한동안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잘못된 보증으로 집안에 빨간딱지가 더덕더덕 붙은 것도 여러 번이다. 싸움이 잦아질수록 큰소리도 점차 격양되어 결국엔 물건이 부서지고, 끝내 폭력이 되었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온 날은 지옥이었다.

한참을 아버지를 못 만났다. 언제 아버지를 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느 늦은 밤, 한 남자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때였다. 그날의 일이 아직 내게는 너무나 생생하다. 거칠게 두드리는 문소리에 잠이 깼다. 엄마가 현관으로 나갔고 그 남자는 아버지의 이름을 말하며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어찌 된 일인지 우리 집 문은 쉽게 열렸다. 그 남자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었다. 소아마비. 그 당시는 소아마비로 장애가 있는 사람이 많았다. 엄마는 아버지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택시운전을 했는데 일반택시가 아니라 콜택시여서 회사로 연락하면 통화가 가능했다. 아버지가 들어오자 그 남자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애원했다. "제발 제 아내를 돌려주세요. 그 사람 없이 나는 살 수 없습니다. 제 아내에게서 떠나 주세요. 선생님도 이렇게 아내와 딸아이가 있지 않습니까?" 나는 지금도 아버지가 생각날 때면 앙상하고 창백하다 못해 푸른빛이 돌던 그 남자의 왼쪽 다리가 함께 떠오른다. 그리고 1년 후 아버지는 소원대로 엄마와 이혼을 했고 그 남자의 아내와 결혼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이해할 수는 없다. 어린 나였지만 그 남자의 다리를 보는 순간 아버지를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엄마.
아버지 얘기를 하면서 잠깐 말했듯 엄마는 늘 불면의 밤을 보냈다. 엄마와 나는 집 없는 떠돌이처럼 밤마다 놀이터를 배회했다. 그 앙상한 다리의 남자가 왔다 간 날 이후 짐작만이었던 모든 일들은 사실이 되었고 결국 아버지의 여자까지 대면했다. 아버지의 여자 또한 그 남자처럼 제 발로 엄마를 찾아왔다. 긴 머리에 늘씬한, 남편의 아름다운 여자... 그 여자가 왔다 간 날 엄마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휘적휘적 동네 상가 옷가게에 가서 원피스를 샀다. 나는 그 원피스도 생생히 기억한다. 테일러카라에 허리까지 앞 단추가 달려있고 얇은 허리띠 밑으로 플레어스커트가 이어지는 감색 원피스. 예쁘다는 양장점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엄마는 그 원피스를 두말 않고 샀다. 그리고 엄마는 그 원피스를 단 한 번도 입지 않았다. 엄마가 그 원피스를 어떤 마음으로 샀는지, 그리고 왜 입지 않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두 분의 이혼 후 나는 엄마와 함께 산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름다운 그녀와 그녀의 딸 둘과 산다. 아버지 곁에 아름다운 그녀와 그녀의 딸들이 있다는 말은 곧 엄마와 나에게 줄 양육비란 없다는 뜻이다. 엄마는 나를 키우기 위해 온갖 일을 하셨다. 나는 아버지를 잃음과 동시에 엄마의 자리마저 빼앗겨 버렸다. 새벽에 일찍 일을 나가 늦은 밤 집에 들어오는 엄마. 나는 외동이라 늘 혼자였다. 엄마가 집에 올 때까지 눈이 빠져라 기다리지만 막상 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올 때면 나는 뛰어나가 엄마품에 안기는 것이 아니라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을 했다. 엄마가 늘 울었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다고 매일 밤 소리 내어 우는 엄마의 그 모든 것이 나 때문인 것만 같았다. 엄마가 필요하다고 사랑해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나를 먹여 살리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힘에 부쳐 나에게 사랑까지 줄 여력이 없었다. 먹여 살리는 일 그 자체가 당시 엄마로서는 최선의 사랑이었겠지만 매일 밤 엄마의 눈물은 내게 큰 상처가 되었다. 나만 없으면 엄마가 더 이상 울지 않고 행복해질 수 있을 거란 죄책감과 엄마에게서마저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나를 한걸음도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 엄마의 고달픔은 내가 커가면서 점점 폭언과 정신적 학대로 표출되었다. 같은 여자로서 엄마의 서글픈 삶과 그 고단함을 절절히 이해하지만 나는 엄마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하기엔 상처가 너무 크고 깊다.




3년 전부터 일 년에 한두 번 명절 즈음에 아버지가 집에 와 식사하고 한 시간쯤 머물다 가신다. 미안함 때문인지(미안함이라면 양쪽 집 모두 해당될 터이다. 과거 가족이었던 나와 엄마, 그리고 현재 가족인 그녀와 그녀의 딸들 말이다. 아버지는 그녀의 딸들로 인해 사위도 보았고, 외손주도 보았다. 아버지 핸드폰 바탕화면엔 외손주들이 방글방글 웃고 있다. 내가 아버지께 드릴 수 없는 행복을 그녀의 딸들이 해드리고 있으니 이제는 그녀의 딸들이 정말 아버지의 딸들이 되었다.) 불편함 때문인지, 눈치 주고 쫓아내는 것도 아닌데 아버지는 아무리 길어도 두 시간을 채 머물지 못하고 식사가 끝나면 믹스커피 한잔 드시고 바로 가신다.


작년 설 집에 오셨을 때 세배를 드리자 아버지는 문득 앞뒤 맥락 없이 "미안하다."는 말을 툭 하셨다.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잘못 들었나? 1, 2초의 짧은 순간이 10분, 20분과 같이 느껴졌다. 미안하다는 딱 그 네 음절의 말에 나는 이제 아버지를 놓아드려야 하는구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됐는데 내가 붙잡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모든 감정들, 그리움, 미움, 서러움, 어린 시절 못다 한 사랑을 이렇게 놓아버려야 할 때가 와버렸구나... 아버지의 말에 괜찮다는 말도, 긴 세월에 대한 원망도 할 수가 없다. 숨이 안 쉬어졌지만 아버지가 어렵게 그 말을 꺼냈다는 걸 알기에 최대한 태연하게 말했다. "아버지, 건강하세요. 오래오래 사셔야 이렇게 1년에 한두 번 얼굴이라도 보죠." 아버지는 팔순이시다. 아버지의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이제 와 나이 들어 나의 부모님을 생각해보면, 두 분 또한 유년시절 부모의 사랑이 부재했다. 아버지는 어려서 큰집에 보내져 큰어머니 손에 키워졌고, 엄마는 유복자로 태어나 아버지를 모르고 자랐다. 두 분 모두 가정의 따스함이나 부모의 역할을 경험으로 학습하지 못한 채 나의 부모가 된 것이다. 한 번도 서로의 속내를 내보이며 깊은 이야기를 나눠 본 적 없지만 부모님의 마음속에도 메마른 모래사막이 있었으리라. 그렇다고 해서 부모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관면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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