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젊음

함께라는 연대의 힘

by 은섬


엄마가 무릎 수술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짧은 기간이 아니어서 병원에서 생활할 물품들을 챙기는데 머리빗이며 로션이며 소소한 게 생각보다 많다. 엄마 화장대 서랍을 열어 무엇이 필요한지 이것저것 살펴보는데 구석에 고이 접힌 종이가 있다. 뭘까? 그 종이가 자꾸 신경 쓰인다. 뭐지? 결국 꺼내본다... 이게 뭐람?


한총련 탈퇴에 관한 안내문

¿ 학부모님

귀하의 자녀는 ¿대학교 ¿학생회장으로서 한총련 중앙조직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한총련 중앙조직을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금년 3월말까지 한총련을 탈퇴하지 않은 구성원들에 대하여는 이적단체 구성. 가입 죄로 엄단하겠다는 확고한 방침을 밝힌 바 있습니다.

※ 이적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음 (국가보안법 제 7조 제 3항)

검찰은 한총련 중앙조직 구성원들에 대해 조속히 한총련을 탈퇴함으로써 불필요한 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다시한번 촉구합니다. 검찰은 금년 3월말까지 한총련을 탈퇴하는 구성원에 대하여는 이적단체 구성. 가입죄로 처벌하지 않음은 물론 그 이전의 범행사실에 대하여도 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의 관용을 베풀것입니다.
검찰에서는 총학생회 단위의 탈퇴는 물론 구성원 개인별 탈퇴도 인정하고 있으며, 개별적으로 탈퇴하고자 하는 경우 탈퇴서를 각 대학당국에 제출하면 됩니다.
학부모 여러분들께서는 귀하의 자녀가 이적단체 구성. 가입죄라는 명예롭지 못한 죄명으로 사법처리되는 일이 없도록 자녀를 적극 설득. 순화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999. 5. 19
¿경찰서장


내가 유일하게 냉소적인 시선을 거두고 열정을 불태웠던 시절이 대학 때다. 어릴 적부터 일관되게 고집해온 냉소와 자조를 버리고 뜨거울 수 있었던 건 동아리 활동 덕이다. 입학하자마자 나는 풍물패에 들어갔다. 신승훈, 이승환 같은 가요도 좋아했지만 어려서부터 우리 가락도 좋았다. 풍물패 특성상 우리는 함께 모여 악기를 연습하고, 진을 펼치며 춤을 추고, 같이 공부하면서 선후배 동기들과 젊은 날의 고민들을 털어놓고 의견을 나누었다.


이미지 한국민속촌 홈페이지 https://www.koreanfolk.co.kr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를 통해 성장하며 서로 소통하는 과정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확장되었다. 확장된 관점만큼 세상과 사회 현상에 눈을 돌려 관심을 갖고 주변의 작은 목소리들을 놓치지 않고 귀 기울여 듣게 되었다.


현실의 문제들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유기적인 관계 안에서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 시대적 배경 속에 어떻게 왜 생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무엇의 영향으로 문제가 촉발됐는지 살펴보는 것. 가난의 대물림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가와 기득권층의 지배구조 때문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고 그들의 기본권을 위해 함께 연대해야 한다. 학생 신분이기에 더더욱 두려움 없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신념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나와 내 동기들이 생각하는 건강한 사회운동 Social Movement 이다.


('대학생 = 운동권 = 데모 = 화염병 쇠파이프 = 주사파 종북 빨갱이' 이런 공식으로 학생들에게 굴레를 씌우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학생운동의 방향을 제시하던 PD_NL 계열이란 큰 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그 경계가 모호해졌고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오늘날 운동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캠페인, 사회참여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모든 것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형편이 어려운 환우들의 치료비를 위한 모금이라던가, 정의를 위해 함께 촛불을 드는 것,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하는 것, 선행을 실천한 자영업 사장님께 돈쭐을 내러 가는 행위 모두 그렇다.)


위의 경찰서장 명의로 온 협박 편지는 우리 집에 우편으로 온 것이고, 나중에는 협박편지로도 모자라 엄마를 경찰서로 불러 각서에 싸인까지 하게 했다. 딸이 이적행위를 하고 다니면 엄마가 책임지겠노라고. 이건 뭐 연좌제도 아니고, 이적행위 라니. 누가 적이고 또 어떻게 적을 이롭게 한다는 건지... 명칭조차 비장한 국가보안법. 일본 제국주의 공포정치를 그대로 차용해 이승만 정권이 제정한 법을 이제는 버릴 때가 되지 않았나?


학생회 활동을 하면 자동 보호관찰대상자로 리스트가 올라가 담당 형사가 배정되던 때가 바로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로 일컫던 김영삼, 김대중 정권 시절이었다는 것이 씁쓸하다. 검찰개혁 없이(안 한 건가? 못 한 건가?) 지난 정권의 폐해를 그대로 답습한 이유다. 엄마는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걸 왜 이제껏 나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한참이 지나 엄마가 퇴원한 후 물어보았다. 엄마가 아직까지 그것을 화장대 서랍에 가지고 있었던 것 치고는 대답이 매우 심플하다. "너 그런 거 안 했잖아. 아니야?"




그 시절의 나는 2학년 때까지 동아리 활동에 올인했고, 정말이지 악기를 사랑했다. 3학년 때 학과 공부에 관심을 가지면서 과학생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했다. 4학년 때는 학과를 넘어서 전체 학우들을 위해 할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열심히 뛰어다녔다. 마침 대학 평가제와 맞물려 학교 측과 많은 의견을 나누며 학우들의 복지를 위해 나름 할 일이 많았다. 내 젊음이 가장 뜨거웠던 때다. 선후배 동기들이 없었다면 여전히 차가웠을 젊음이었다.


함께라는 연대의 무한한 가능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듯하고도 날카로운 시선, 작은 것에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를 나에게 가르쳐준 선후배 동기들은 내 삶의 소중한 지표이자 자양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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