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엄마가 나를 버리고 가는 꿈이바로 그런 꿈이다. 꿈속에서 나는 언제나 어린 아이다. 떠나겠다는 엄마를 차마 붙잡지도 못하고, 가지 말라는 말 한마디 못한 채 하염없이 울기만 하다가 까무러칠 때쯤 잠에서 깨면 온 몸이 땀범벅, 눈물범벅이다.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반복적으로 틀어놓은 것처럼 어쩌면 그렇게 조금의 오차도 없이 한결같은 꿈인지 모르겠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임을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 꿈을 꾸고 나면, 내가 요즘 스트레스받나? 피곤한가? 돌이켜 볼 정도로 끈질기게 나를찾아와 내 정신을 갉아먹는 악몽.이 나이에 아직까지이런 꿈이라니...
내게는 고교 동창 친구들이 몇 있는데 그중에 한 친구는 대학을 졸업한 후 그녀가 외국에서 터를 잡고 난 다음 한참이 지나서 지근한 사이가 되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가위로 오려 낸 것처럼 고등학생 시절의 기억이 없다. 끊임없이 재잘거리며 싱그러움이 가득 찰 그 아름다운 시절을 마음 하나 없이 모래알처럼 지냈으니 기억이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의 고교 3년은 친구 몇의 얼굴만 떠오를 뿐 그 친구들과의 에피소드도 거의 기억에 없다. 사진을 보면 당시 상황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소풍 때나 수학여행 사진을 봐도 도통 깜깜이다.그런 나를 친구라고 종종 안부를 묻고, 모임에 끼워주고, 소식을 전하는 친구들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그녀는 대학 졸업을 하고 몇 년 후 이 나라를 떠났다. 그녀가 떠난 후 또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나는 그녀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 그녀의 삶을 방문했다. 오랜 시간 서로 보지 못했고 공유하고 있는 기억의 조각들도 서로 맞지 않지만, 늘 함께 지내왔고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은 100% 그녀의 성향과 배려 덕분이다. 출국의 이유는 각자 저마다의 사정이 있겠다. 원대한 포부를 품고, 공부하기 위해, 성공하려고, 가족을 따라, 취업, 결혼, 자녀의 미래를위해서, 아니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으로...
그녀의 방 침대에 나란히 누워 우리는 각자 지나 온 시간과 일들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질문이나 대답은 없었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면, 조용히 들어주는 게 다였다. 나는 나의 꿈 이야기를 했다. 늘 한결같이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악몽에 대해. 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고국을 떠나 외국에 자리잡기까지의 시간들을. 그리고 긴 이야기 끝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난 힘들 때면 가족들과 저녁을 먹는 꿈을 꿔." 숨이 턱 막혀왔다. 따듯한 음식과 행복한 웃음이 넘치는 가족과의 저녁이, 날마다 반복되는 그 시간이 그녀에게는 악몽으로 남을 만큼 고통이었다니...
우리는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아무도 없고 우리 둘 뿐이었지만, 그때 우리는 소리 내어 우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처럼 숨죽이고 울었다. 우리가 소리친다 해도 아무도 우리의 말을 알아들을 이 없는 그 타국 땅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