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이게 뭔 말이야?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먼저 밝힌다. 어꾼 찌란은 캄보디아 언어로 감사의 표현이다.
어꾼 =thanks
찌란=very
어꾼 찌란=Thank you very much.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컸던 걸까?유독 모험 가득한 책을 좋아했다. '세계의 불가사의' 시리즈가 최고였는데 그중에서도 '잃어버린 도시' 편이 가장 좋았다. 아틀란티스 마추픽추 앙코르 왓 폼페이... 전설 속 이야기부터 현존하는 곳까지. 모험 이야기, 낯선 곳의 이야기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상상에는 한계가 없다. 그 옛날 도시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미지의 도시들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지우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의 일기장에는 자연스레 그런 내용들이 가득했고, 선생님의 일기장 검사에서 나는 늘 걱정스러운 첨삭을 받았다. 그리고 어느 날 집안의 모든 책이 싹 사라졌다. 엄마가 선생님과 면담을 하고 온 날이었다. 쓸데없이 하루 종일 앉아 멍하니 공상만 하는 아이. 어른들의 눈에 나는 그랬다. 그 이후로 상상 속 모험 가득한 세상과는 이별이다. 일기를 비롯한 나의 모든 글쓰기도 멈췄다. 더 이상 나의 진짜 마음을 글로 쓰지 않았다. 엄마가 우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으니까.
커가면서 세상 구경의 반경이 점점 넓어지고, 다른 나라를 갈 수 있게 되자 캄보디아가 눈에 들어왔다. 앙코르 왓의 사진을 보는 순간 어린 시절 '잃어버린 도시'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기억의 소환이라기보다그 시절의 나로 빨려 들어갔다. 다시 상상할 수 있을까? 여행 계획을 세우며 힌두교와 캄보디아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다. 앙코르 왓의 모든 부조들은 두 가지 주제로나뉜다. 하나는 힌두 신화, 다른 하나는 왕조의 역사. 힌두 신화는 무척이나 광범위하다. 선신과 악신이 뱀을 밧줄 삼아 줄다리기로 우유의 바다를 휘저으며 시작된 천지창조부터 신들의 전쟁까지 그리스 로마 신화 부럽지 않게 서사가 장대하고 박진감이 대단하다. 신화 못지않게 그들의 조상들이 왕조를 세우고 지키기까지 이야기 또한 매우 극적이다. 내부적, 외부적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그들의 왕들또한 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루트를 짰다. 당시 씨엠립까지 직항이 부정기적이라 일단 태국으로 간 다음 카오산로드에서 나이트 버스를 타고 국경까지 가기로 했다. 걸어서 태국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로 간다. 삼면이 바다고, 위로는 북한으로 길이 막힌 우리의 처지로는 국경을 걸어서 넘어간다는 것 자체가 경험할 수 없는 것이어서 신선하다. 국경을 넘으면 자가용 택시를 타고 비포장 길을 한참이나 달려야 한다.
드디어 씨엠립 앙코르 왓. 출입증을 끊는데 7일권을 선택했다. 보통 관광객들은 1일권 또는 3일권을 끊는데 나는 유명한 몇 곳만 쓱 보는 것이 아니라 구석구석 모든 곳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지인 오토바이 가이드도 섭외했다. 소피아. 그의 이름이다. 툭툭이나 자가용이 아닌 오토바이라 최대한 기동성 있게 탐험가 마인드로 이곳저곳 다닐 수 있다. 그의 이름이 프랑스 여성 이름이어서 당황했는데, 본인 이름이 그렇다 하니 소피아라고 부른다. 지도를 보며 남들이 안 가는 작은 사원들에 가자고 조르는 나의 요구에 소피아는 난처해하면서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를 태우고 다녔다. 오토바이는 처음 타는 거라 조금 무섭긴 했지만 나중에는 그 속도감을 즐길 정도가 되었다.
유명하지 않은 작은 사원들은 무너진 채로 복구가 안된 곳들도 있고, 드나드는 인적이 없어 가는 길이 수풀로 우거져 있는 경우도 있다. 소피아는 둘째 날부터 정글 칼을 준비해 풀을 베며 길을 내주었다. 머리를 맞대고 지도를 이리저리 보며 길을 찾아 탐험처럼, 소풍처럼 풀피리 불어가며 소피아와 재미나게 쏘다닌다. 소피아는 단순히 길 안내만 해준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탐험에 동참해주었고 길 위에서 만나는 야생동물들, 곤충들, 꽃들, 열매들에 대해서도 훌륭히 설명을 해주었다. 맛있는 열매를 발견하면 나무 위로 올라가 따주기도 했다. 그는 스무 살이지만 뒤늦게 학교를 가서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낮에는 이렇게 아르바이트로 오토바이 가이드를 하고 저녁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졸업 후에는 정식 가이드가 되어서 오토바이가 아닌 차량으로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바이욘의 미소
회랑의 부조 / 소피아
앙코르 톰으로 가는 길은 한 폭의 그림처럼 매우 아름다운데 앙코르 톰을 둘러싼 성곽에 들어서면 거대한 바이욘의 미소가 눈에 들어온다. 바이욘의 미소는 캄보디아인들의 미소이다. 유적지에서, 식당에서, 숙소에서, 길 위에서 언제 어디서든 마주친 그들 모두는 바이욘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 주었다. 수줍음 많고 착한 그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옆에 있는 내가 정화되는 느낌이다. 나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보다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로컬 식당을 소피아에게 추천받아 이용했는데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어꾼"이라 감사의 인사를 하면 그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아이 같이 웃는다. 주문한 음식이 나와 서빙해줄 때 "어꾼 찌란"까지 말하면 벌써 저만치 도망가서 나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너무 순수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이 그 선함 만큼 행복을 누리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여행을 준비하며 그들의 역사를 공부할 때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었다. 베트남 전쟁의 최대 피해자가 베트남이 아닌 캄보디아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월맹군에 전쟁물자를 보급하던 호찌민 루트를 끊기 위해 미군은 베트남본토보다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더 많은 폭탄을쏟아부었다. 이웃나라의 전쟁에 그들의 땅이 초토화되고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베트남전이 끝났다고 그들에게 평화가 온 것도 아니다. 더 끔찍한 학살과 내전이 발생했다. 정권을 잡은 폴 포트의 크메르루주 군부는킬링필드라는 믿어지지 않은 대학살을 자행했다. 자국의 혼란을 타파하고자 하는 베트남의 제물이 되어또 다른 전쟁을 치러야 했고 게릴라전이 된 내전 상태도 계속되었다. 미군의 폭격에 초토화된 땅 위로 또다시 지뢰가 깔렸다. 캄보디아는 죽음의 땅이 되었다.
평화 파리협정 합의문으로 1991년 내전이 종결되었지만 1998년 폴 포트가 사망하기까지 게릴라전은 산발적으로 계속되었고 아직 그들의 땅에는 수많은 지뢰와 불발탄이 제거되지 못한 채 묻혀있다. 학살에 대한 재판과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희생자에 대한 본격적인 배상이나 복권은 아니며, 희생자 수와 피해규모를 정확하게 추산하지도 못하고 있다.
사원 내부 / 압사라 부조
앙코르 왓 일출
나는 그들의 선함이 너무 그리워 그다음 해에도 캄보디아를 방문했다. 두 번째 방문에서는 그들의 삶에 포인트를 맞춰 시장, 수상가옥, 논과 밭. 산과 들을 다녔다. 어꾼에 부끄러워 찌란에 어쩔 줄 몰라 도망가는 순수한 그들의 미소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하루 $1의 고단한 그들의 삶이 조금은 더 넉넉해지기를, 경제적 여유가 정서적 메마름이 되지 않기를, 그리고 그들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선함을 떠올릴 때 언제나 내 마음속 첫 번째는 그들의 미소다. "어꾼 찌란, 캄보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