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나라 네팔. 해발 4,130m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ABC)에 올랐다. 그곳 사람들은 산에 올랐다고 하지 않고 산이 받아준 거라 말한다. 그 말이 맞다. 안나푸르나가 나를 받아 주었다. 히말라야는 그 자체로 거대한 자연의 품이다. 그 앞에서는 경외심이 저절로 든다.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인간은 그저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전문 등반가가 아닌 일반인은히말라야에 베이스캠프까지 간다. 원래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EBC)를 계획했는데 회사 일정을 길게 뺄 수 없어서 비교적 일정이 짧은 ABC를 택했다. 나 홀로 등반보다는 전문 현지 가이드와 동행을 추천한다. 원래 '셀파'는 고산족의 이름인데 뛰어난 등반 실력으로 안내자 역할을 주로 하게 되어 부족명이 가이드를 지칭하는 대명사처럼되었다. 입산할 때는 팀스와 퍼밋(TIMS 트래커 등록 & Entry Permit 입산허가)을 발급받아야한다. 안나푸르나는 급경사 없이 코스가 무난하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어 고산병의 위험이 비교적 적다. 그리고 중간중간 대략 2시간 거리마다 롯지(숙식 가능한 산장)가 잘 운영되고 있어 트래킹이 용이하다.
산을 오를 때 주의해야 할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고산병이다. 고산병은 몸이 높은 고도에 적응만하면 예방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시간을 주면서 천천히 올라야 한다. 이상증세를느끼면 주저하지 말고 바로 고도가 낮은 곳으로 내려가면 괜찮지만 '여기까지 애써 올라왔는데 다시 내려가라고?' 하는 순간 폐부종, 뇌부종이 온다.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거대함 앞에서는 오름도 내리막도물러섬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머릿속으로 아는 것과 실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별개여서 경험 많은 가이드의 동행은 중요하다. 특히나 고산증세가 오면 판단능력이 떨어지기에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가이드는 위험상황에 대처하는 기본 교육을 받았고, 필요한 현지 자원을 동원할 수 있다. 위급 시에는 헬기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순간에 당신을 기꺼이 도울 것이고, 조언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놀랍고 경이로운 대자연 앞에서 당신이 느낄 벅찬 감격을 함께 나눌 것이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에서부터 가이드는 나에게 샤워는 해도 머리는 감지 말라고 했다. 고개를 오래 숙이고 있거나 머리에 한기가 들어 두통이 한번 생기게 되면 더 이상 등반이 어렵다고 한다. 이곳에선 그가 전문가니 나는 씻는 것조차 그의 조언에 100% 따른다.
ABC 가는 길 / 나의 든든한 가이드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쌍 무지개가 가까이 있다
MBC부터 기상이 급격히 나빠져 밤새 눈보라가 무섭게 몰아쳤다. 기상예보는 계속 좋지 않다. ABC까지 가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가이드가 나의 의견을 묻는다. 나는 경험 많은 가이드의 결정을 신뢰하기로 했다. 가이드들끼리 의견을 한참 주고받더니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나쁜 기상에ABC까지 오르는 것을 원치 않는 등반객만롯지에 머물고, 모두 ABC로 출발하기로 했다. 나도 출발이다.
ABC까지 왕복 4시간 코스다. 날이 반짝 좋다. 폐활량이 그리 좋지 않은 나는 호흡이 달려 한걸음 한걸음이 매우 느리다. 남들이 보면 슬로모션으로 분절해 걷는 것 같이 보였을 것이다. 욕심내지 않고 내가 걸을 수 있는 속도로 걷는다. 그래야만 오를 수 있다. 내 호흡을 잃으면 안 된다. 앞장서 걷던 가이드가 내 속도를 체크하더니 포지션을 바꿔 내 뒤에서 걷는다. 내가 처질까 봐 걱정인가 보다. 오로지 흰 눈과 파란 하늘밖에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ABC에 다다랐다. 가이드와 기쁨의 포옹을 나누며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고마워. 너의 도움 없이는 나는 이곳에 오지 못했어." 그곳의 모든 풍경은 눈부시게 경이로웠다. 경이롭다는 단어 이외에 어떤 표현으로 이 웅장함을 설명할수 있을까?
롯지에 들어서니 먼저 도착한 이들이 박수로 환영해준다. 그들과도 가벼운 포옹으로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나눴다. 날이 어둑해지기 전에 다시 MBC로 내려가야 한다. ABC에서 하룻밤 묵고 안나푸르나의 일출을 보는 것이 모든 이가 바라는 최고의 하이라이트지만 기상상태를고려해 가이드들은 MBC로 귀환할 것을 권했다. ABC에서 일출을 보겠다는 몇만 남고 모두 MBC로 발길을 돌렸다. 내려가는 길에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MBC에 도착하자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롯지는 아궁이와 난로가 있는 부엌과 식당이 제일 따듯하다. 모두들 식당 테이블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음악을 들으며 개인 시간을 보낸다.등반 초부터 자주 마주친 미국인이 있는데 그녀는 20대 특유의 생기 넘치는 발랄함으로 롯지에서 분위기메이커다. 하지만 식사 주문만은 꽤나 신중하다. 그녀가 비건이기 때문이다. 비건은 단순히 육류만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유제품, 달걀 등 모든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것으로 베지테리언보다 더 엄격한 식사 제한을 한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채식을 하는 인구가 많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내게는 채식주의라는 개념이 없던 때였다. 첫 만남에서 그녀는 내게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선택으로 비건이 됐다고 말했다.
눈보라가 점점 심해진다. 저녁식사로 간단히 팬케이크를 시켰다. 거하게 뭔가를 먹을 컨디션도 분위기도 아니다. 나의 주문에 그녀도 똑같이 팬케이크를 시켰다. "우유, 버터, 달걀, 꿀을 빼주세요." 그녀의 주문이 길어진다. 이 산속에 비건 팬케이크가 가능할까? 딱 봐도 인스턴트 믹스 파우더 같은데... 두 팬케이크가 동시에 주문이 들어갔고 동시에 음식이 나왔다. 그녀의 접시가 비건 메뉴였는지 정확히 알 길 없지만 그녀가 유제품 달걀 알레르기가 없다는 것이 생각나 일단 안심이다.
저녁을 먹고 따끈한 진저티를 손에 들었다. 팬케이크가 나의 픽이었다면, 진저티는 그녀의 픽이다. 난로가에 조용히 앉아 이래저래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대자연 앞에 경외심이 들었던 순간들, "나마스떼~" 합장하며 축복을 빌어주던 선한 사람들, 나처럼 이곳을 방문한 수많은 이방인들... 아, 이방인! 나 또한 이방인이면서 그들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다가 이방인들이란 대목에서 생각들이 다시 어지럽게 흐트러졌다.
등반 중에 여러 등반객들을 보았는데 팀을 이룬 이들의 규모는 상상 외로 크다. 등반팀은 텐트와 식량, 조리도구까지 모두 챙겨 들고 올라가기 때문에 짐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그 모든 짐들은 오롯이 현지인 포터들의 몫이다. 포터들은 1인당 70Kg~100Kg까지 나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무게는 순전히 등반팀의 짐 무게일 뿐이다. 포터들은 등반팀의 짐뿐만이 아니라 포터 자신의 개인 짐도 져야 한다. 하루 이틀에 끝나는 등반 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등반팀을 보았는데 그들의 포터들이 유리병에 담긴 에비앙 생수를 짝으로 끝도 없이 나르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유리병은 무겁기도 하거니와 너무 위험하다. 아무리 그들에게 대가를 지불한다고는 하지만 유리병 생수라니...
롯지에서 달 밧을 먹을 때도 그랬다. 달 밧은 우리의 백반과도 같은 그들의 기본 식사로 어디서든 늘 먹을 수 있다. 네팔 밥은 찰기가 없어서 후~ 불면 날아가는 쌀밥인데 달이라고 부르는 콩 수프에 쪼물쪼물 비벼서 몇 가지 반찬을 곁들여 먹는다. 현지인들은 모두 달 밧을 맨손으로 먹는다. 이방인들은 스푼과 포크를 사용한다. 가이드가 내게 손으로 먹어볼래? 제안을 했다. "OK! 좋은 생각이야. 나도 그러고 싶었어.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가르쳐줄래?" 그가 식판을 들고 내 옆자리로 와서 천천히 시범을 보여준다. 달을 조금씩 부어가며 손으로 밥을 비빈다. 너무 질면 안 되고 적당해야 밥이 뭉쳐진다. 오! 이거였구나! 나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밥을 한풀도 흘리지 않고 다 먹었다. 날아가는 밥을 스푼으로 떠먹자니 늘 반쯤 흘리면서 먹었던 터다.
내가 가이드와 함께 손으로 식사하는 것을 보고 롯지에 있던등반객 몇이 위생에 관한 말을 일행들끼리 주고받았다. 롯지가 워낙 작아 속삭여도 다 들릴 판에 그들은 무례하게도 큰소리로 말했다. 내가 못 알아들을 거라 생각했는지, 아니면 일부러 들으라고 한 건지... 손으로 먹는 것이 더 위생적일까? 스푼으로 먹는 것이 더 위생적일까? 롯지는 목조 건물로 물청소가 용이하지 않다. 우리와 같은 등반객들에게는 하룻밤 머무는 장소일 뿐이지만 롯지에 사는 현지인들에게 그곳은 평생을 사는 살림집이다. 콩 수프와 밥을 질질 흘리며 먹게 되면 그들의 식탁과 바닥에 음식물이 스며들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음식물이 스며든 그곳에서 잠을 청한다. 침대가 있는 방은 등반객용이고 식당, 부엌이 그들의 침실이다. 청결뿐만이 아니다. 벼농사짓기가 어려워 쌀이 귀한 곳에서 밥을 반이나 흘리며 먹을 순 없다. 손으로 먹는 것은 자연의 일부로 오랜 세월 살아온 그들의 지혜다.
눈보라는 멈추지 않았고 우리는 MBC에서 사흘간 고립되었다. 고립된 시간 속에서 만년설의 천둥소리를 들었다. 눈사태를 처음 목격하였고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눈이 이토록 하늘을 울릴 정도로 큰소리를 낸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나의 공간에서 눈은 언제나 조용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것에 다시 한번 겸손을 배운다.
공교롭게도 귀국하는 날이 네팔의 첫 국민투표 전날이다. 어쩌다 보니 네팔의 역사적인 날을 함께 경험하게 되었다. 네팔엔 국민투표를 앞두고 전 국민 이동 금지령이 발동했다. 투표율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아직 효율적인 선거인명부 본인 확인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길에 사람도, 자동차도 없다. 도시 전체가 텅 빈 것만 같다. 공항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멘붕이다. 겨우 택시를 불러 공항까지 갔다. 외국인 여행객들만 이동이 허락되었는데 공항까지 가는 길에 총을 든 군인들에게 여러 차례 검문을 받고 그때마다 마른침을 삼키며 여권과 항공권을 그들에게 건네야 했다.
내일이 제20대 대통령선거다. 나는 지난 4일 사전투표를 했다.
참정권이란 기본권을 국민이 보유하지 못하고, 직접 민주주의 제도 또한 정착되지 않은 나라들이 많다. 군부의 탄압이나 독재자, 언론 말살이 세계 곳곳에 만연하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누리는 것들 중에 당연한 것, 거저 주어진 것은 없다. 네팔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민주주의의 뿌리와 민중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예상치 못한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여행은 늘 이렇게 나에게 뜻밖의 것들을 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