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그 엽서는 프랑스로 잘 날아갔을까?

러시아에서 만난 인연들

by 은섬


이 시기에 러시아 여행기를 발행해도 되나? 고민이 많았다. 한 나라의 주권을 무력으로 침공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이와 같은 일이 한반도에서 일어난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과 현실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하지만, 의지가 행동을 바꾸기도 한다. 나는 평화가 최우선이지만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분연히 일어서야 할 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유전자로 이루어진 나 이기에, 나는 전장으로 나가 기꺼이 총을 들 것이다. 행주치마에 돌을 나르건, 삽을 들고 땅을 파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전쟁의 참상을 기록으로 남기건, 할 수 있는 것은 뭐라도 해야 하는 것이 맞다. 팔다리가 없어지면 두 눈을 부릅뜨고 입으로라도 소리치고, 눈과 입마저 없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면 마지막 남은 힘을 다 해 죽는 순간까지 보이지 않는 신께 기도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내 나라를, 가족을, 소중한 그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우크라이나의 시민군 항전을 지지하고 응원한다.(정치 지도자에 대한 지지와는 별개다.)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하겠다.


여행기는 그저 여행기로 읽어주시기 바라며...




어릴 적 '은하철도 999'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랐다. 그때는 우주를 날아다니는 열차와 철이와 메텔, 투명인간 차장 아저씨를 보는 재미였지만 어른이 된 후 다시 본 은하철도 999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쉽게만 볼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다. 철이와 메텔처럼 우주를 횡단하는 증기기관차를 타고 여행하는 게 꿈이었던 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을 계획했다.


일단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전체적인 루트를 잡고, 횡단 열차는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츠크까지 5,185km 구간으로 정했다. 좌석은 쿠페 등급 4인실로 예약했는데 등급이 더 높은 2인실보다 4인실이 오히려 안전할 거란 생각에서였다. 여자 혼자 여행하기에는 2인실인 경우 모르는 누군가와 단 둘이 있게 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이르쿠츠크에서는 버스를 타고 바이칼 호수로 간다. 세상에서 가장 깊고 깨끗한 호수다. 그다음은 블라디보스톡, 다시 인천공항까지 길고 긴 루트다. 비자를 미리 신청하고 바우처도 챙겨야 한다. 모든 여행 일정에 대해 숙박을 증명하지 못하면 추방이다. 각 구간별 열차권과 항공권도 미리 예매했다.


러시아로 출발.

모스크바까지 비행은 연착 없이 순항했고 옆좌석 승객도 무척 좋은 분을 만나서 즐거웠다. 러시아는 옛 소련이란 경직된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어서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할 때 살짝 긴장했는데 의외로 입국심사는 여권, 바우처, 각종 예약 서류만 확인하고 별다른 질문 없이 통과됐다. 모스크바는 생각보다 많이 복잡했고 거대했다. 일단 사람들이 크다. 그들 옆에 서 있으면 나는 초등학생 수준이다. 건물의 크기도 압도적이고 뭐든지 대규모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구 동독 시절 건설된 공원이며 체육시설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놀랐었다. 사회주의 또는 공산이란 체제하에 보편적인 무엇은 다 거대한 듯하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예약증을 보여주고 티켓을 교환한다. 기차가 올 때까지 시간이 있어서 식료품점에서 먹을 것을 샀다. 흑빵을 샀는데 크기가 또 크다. 제일 작은 것을 골랐는데도 내 얼굴 두배다. 그리고 요거트란 말이 통하지 않아서 눈치껏 가장 요거트스러운 것을 골랐다. 얼룩소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유레카! 했다. 요거트도 크기가 크다. 플랫폼으로 돌아와 기차를 기다린다.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드디어 은하철도 999를 타는구나. 나의 객실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횡단 열차에서 바라보는 러시아의 광활한 풍광은 어떨까? 기차가 왔다. 승무원 두 명에게 공항에서처럼 티켓과 여권, 바우처, 각종 예약을 일일이 확인받아야 했다. 그들은 꼼꼼하게 확인했지만 무례하거나 강압적이지 않았고 친절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나의 객실을 찾아갔다. 나는 4인실 왼쪽 위칸이다. 아랫칸이 편하긴 한데(혹시나 누가 내 침대에 올라오면 발로 차기라도 할 요량으로) 일부러 위칸을 선택했다.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할머니가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네신다. 인사를 했더니 나의 발음이 신통치 않았는지 할머니께서 외국인이냐고 영어로 물으신다. 자신은 농부라고 말하시는데 이토록 유창한 영어를 하시는 농부 할머니라니 의아했다. 평생 학교에서 영어교사를 하셨고 지금은 은퇴해서 작은 농장을 운영하신다고. 영어 선생님이셨구나. 내 영어는 생존 영어라 문법은 꽝인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객실로 젊은 청년 한 명과 아저씨 한 분이 들어오셨다. 모스크바 출발부터 우리 객실은 4명이 꽉 찼다. 젊은 청년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인데 그도 영어가 유창했다. 검은 머리에 콧수염 아저씨는 처음에 봤을 때 한국 사람인 줄 알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킴이라고 간단히 소개했다. 아저씨는 킴이 아니라 김 씨 성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킴 아저씨도 영어를 쓰셨는데 과묵하셔서 이런저런 말씀을 많이 하지는 않으셨다. 우연이겠지만 우리 객실 4명은 모두 영어로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각 침대마다 독서등이 달려 있고, 가방과 짐을 넣어 둘 수 있는 공간이 침대 시트 밑과 발치에 각각 있다. 베개와 침대 시트가 깨끗하고 도톰한 것이 만족스럽다. 객실 온도도 따듯해서 잘 때는 반팔을 입어도 괜찮을 정도였다. 창가에는 식탁이 하나 있는데 4명이 쓰기에 모자람이 없다. 젊은 청년이 나의 아랫칸 침대였고, 그 맞은편 아랫칸 침대가 킴 아저씨, 할머니가 그 위칸 내 맞은편 침대였다. 할머니는 무릎이 좋지 않아서 오르내리기가 어렵다고 킴 아저씨에게 침대를 바꿔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킴 아저씨는 흔쾌히 자리를 바꿔주었다. 러시아도 장유유서가 있나 보다.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이 방의 방장이 되셨다.


할머니의 진두지휘 아래 각자 먹을 것을 식탁 위에 꺼내 놓는다. 나도 기차역에서 산 커다란 흑빵과 요거트를 식탁 위에 꺼내 놓았다. 벌꿀, 소시지, 과자, 버터, 쨈, 홍차, 빵, 견과류, 끊임없이 먹을 것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이 분들 먹는 것에 진심이다. 창가 가득 먹을 것을 쌓아두고 네 것 내 것 없이 자유롭게 모두 다 같이 먹었다. 평균 두시간마다 한 번씩은 다 같이 무엇이든 먹었는데 이것이 러시아에서 말하는 '공유'의 한 면인가? 싶을 정도다. 다 같이 빵을 먹다가 내가 외마디 소리를 내었다. 이럴 수가! 내가 가장 요거트스러운 것으로 고른 것이 연유다. 요거트인 줄 알았다는 내 말에 그들이 빵 터졌다. 요거트보다 연유가 더 좋다며 그 큰 통의 연유를 빵에도 찍어 먹고 홍차에도 타 먹고 다들 좋아했다. 식당칸에도 우르르 다 같이 갔다. 그들은 러시아 말과 글을 모르는 나를 위해 메뉴를 주문해주고 먹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긴 시간 머무는 정차역에서는 나를 데리고 나가 바깥 구경을 시켜주었다.


처음에 나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는데 어쩐 일인지 그들끼리 주고받는 말을 내가 알아듣고 있었다. 일상적인 가족 얘기, 직장 얘기, 때론 신문을 보며 그들끼리 나누는 여러 가지 얘기... 아무 생각 없이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라디오처럼 들으며 책을 거나 침엽수림이 끝도 없이 펼쳐진 창밖 풍경을 보거나 했다. 그러다가 그들이 농구 얘기를 주고받는 대목에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정신이 퍼뜩 든다. '농구를 러시아에서도 바스켓볼이라고 해? 아니잖아! 어째서 내가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 거야?' 나를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 그들끼리의 대화도 영어로 했던 것이고, 그 배려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나머지 나의 뇌가 이질감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지? 지금 생각해도 내가 그들을 만난 건 참 특별한 경험이다.


이틀째 아침 일찍 할머니가 내릴 역이다. 할머니는 내리기 30분 전부터 두 남자에게 나를 잘 돌보라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한다. 그들은 할머니의 당부마다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걱정 마시라고 한다.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빰을 맞대며 좋은 여행 되라고 축복해 주셨다. 우리 모두는 플랫폼까지 나가 가족처럼 할머니를 배웅했다. 할머니가 가시고 나니 객실이 텅 빈 것 같다. 며칠 사이에 정이 옴팡 들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당부대로 두 남자는 나를 더 살뜰히 살폈다. 그날 자다가 새벽에 갑자기 뭔가 휑하고 싸한 느낌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객실을 나서는 킴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의 종착역이었다.


나는 갑자기 자다 일어난 거라 영어도 아니고 한국말로 "아저씨 가요?"라고 말했다. 킴 아저씨는 러시아 말로 "응. 나 이제 내려. 더 자. 나오지 마" 라며 엉거주춤 반쯤 몸을 일으킨 나에게로 와 팔을 뻗어 이불을 도로 덮어준다. 아저씨가 분명 러시아 말로 했는데 그 말이 한국말인 듯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청년은 플랫폼까지 나가 킴 아저씨를 배웅을 하고 들어왔다. 이번에도 나는 한국말로 "김 씨 아저씨는 잘 가셨어?" 하고 물었더니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러시아 말로 "잘 가셨어." 한다. 언어가 이렇게 통할 수 있다는 건 서로의 마음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돕고자,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작은 기적.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어쭙잖은 현지어나 영어로 소통하는 것보다 그냥 각자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 더 명확하게 뜻이 전달될 때가 있다.


우리 객실은 청년 1명이 더 타서 3명이 되었는데 그 청년은 곧 내렸다. 다시 둘이 되었다. 둘이 되자 그는 객실 문을 잠그지 않고 항상 조금 열어두었다. 그리고 침대도 내 자리 아랫칸이 아니라 맞은편 위칸으로 옮겼다. 그의 매너에 픽 웃음이 난다. 작은 것 까지 신경써주는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라고는 고마운 마음 뿐이라는 것이 미안했다. 나의 종착역인 이르쿠츠크까지 가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두시간마다 무엇이든 함께 먹었고, 눈 내리는 창밖을 함께 보았고, 한국어로 쓰여 있는 러시아 가이드북을 함께 재미있게 읽었다. 러시아 곳곳이 한국이란 나라에 가이드북으로 소개되어있는 것을 그는 흥미로워했다. 책에 실린 사진들을 보며 그가 이것저것 설명을 해 준다. 드넓은 자연에서부터 레닌의 이야기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나의 종착역이다. 그는 계속 열차로 더 먼 곳까지 간다. 내가 바이칼을 잘 찾아갈 수 있을지 그가 걱정했다. 걱정 말라고 안심시키고 기차에서 내리려는데 그가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객실에서 가방을 들고 와 따라 내린다. 내가 왜? 하니까 본인은 다음 기차를 타고 가도 된다고 한다. 그리고 나를 버스터미널까지 바래다주었다. 아무래도 내가 버스를 타지 못할까 봐 걱정이 컸나 보다. 버스 시간을 확인해주고 티켓 끊는 것까지 지켜봐 주었다. 이제 진짜 작별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버스시간은 많이 남아있었다. 내가 엽서를 부칠 수 있는 곳을 찾자 그는 버스터미널 바로 옆 우체국까지 나를 안내해주고 기차역으로 돌아갔다. Спасибо 스빠시바... 가벼운 포옹으로 서로에게 작별한다. 그의 진심 어린 친절에 나의 진심 어린 감사가 전달되기를 바랐다.


우체국에서 엽서를 사려는데 우리나라 관제엽서와 같이 주소와 메시지만 적는 엽서를 준다. 포토엽서를 보여 달라고 하자 저 뒤 구석 진열장에 엽서 뭉치를 꺼내 준다. 정말 오래되어서 사진 색이 바랬다. 심지어 그 진열장은 작은 자물쇠로 잠겨져 있었다. 엽서를 고르다가 불어가 가득 적힌 엽서를 열 장쯤 발견했다. 소인은 찍히지 않았지만 우표까지 붙어있었고 엽서에 적힌 날짜를 보니 4년이나 지났다.


직원에게 그 엽서를 보여주자 직원들이 웅성거린다. 4년 전 프랑스에서 온 여행객이 고국에 있는 친구나 가족에게 엽서를 쓰고 우표까지 붙여 접수한 것이 착오로 진열장에서 긴 시간 잠자고 있었던 것 같다. 자물쇠로 잠겨있던 진열장이었으니 내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언제까지 그곳에 부쳐지지 못한 채로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나는 프랑스로 날아갈 엽서들의 우편료 차액을 지불하고 싶었다. 4년이나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내게 발견되었으니 그 엽서가 프랑스로 잘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우체국 직원들은 괜찮다고, 본인들이 처리하겠다고 돈을 받지 않았다.


나도 지인들에게 엽서를 쓰고 우표를 붙여 보냈다. 여행지에서 보내는 엽서는 그리운 이에게 마음 한 자락을 툭 떼어 보내는 행위이다. 그곳에서 나의 그리움을 그렇게 툭 떼어 보냈다. 지금도 가끔 궁금하다. 그 엽서는 프랑스에 잘 도착했을까? 누구의, 어떤, 마음의 조각들이었을까? 그 소식들이 너무 늦은 건 아니었기를 바란다.



바이칼 호수



어느덧 버스 시간이 되어 버스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겼다. 터미널 안에 새들과 개,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다닌다. 러시아의 겨울이 워낙 혹독하고 길어서 추위를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온 동물들을 이곳 사람들은 내쫓지 않는다. 한 시간 반쯤 버스로 달려 바이칼에 도착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 11월 초 기온이 영하 23도다. 그런데 생각보다 춥지 않다. 오히려 공기가 상쾌하니 좋았다. 아마도 이곳에서 만난 따듯한 인연들의 온기가 가슴에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호수를 바라보며 한동안 여러 가지 상념에 잠겼다. 다시 만나지 못할 타인에게 되돌려 받지 못할 친절을 베푼다는 것. 철이 옆에도 항상 메텔과, 차장 아저씨가 있었다. 세상은 결국 혼자 살 수 없다. 나는 또 그들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내 마음에 맑은 호수가 들어찼다. 호수처럼 깨끗한 그들의 마음이 가득 찼다. 모두들 건강히 잘 지내시기를...




이르쿠츠크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는 러시아 국내선을 이용했고, 인천까지 국제선 항공편으로 무사 귀환했다. 여기서 무사 귀환이란 표현을 쓴 것은 여행 막판에 블라디보스톡 공항에서 작은 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르쿠츠크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러시아 국내선이 공항에 착륙하자 러시아 경찰이 비행기 안으로 들어왔다. 승객들을 둘러보더니 러시아인을 먼저 내리게 한 다음 다른 유럽인들을 뒤따라 내리게 했다. 비행기 안에는 동양인 승객 일곱만 남겨졌다. 일본인이 있냐고 묻는다. 두 명이 일본 여권을 건네자 그들도 내리게 했다. 나를 포함한 다섯이 남겨졌다. 자신을 따라오라고 한다. 산만큼 큰 그를 따라 내렸다.


국적을 묻는다. "South Korea" 짧게 대답했다. 다른 4명은 중국인이다. 내게 혼자냐 묻는다. "Yes" 이번에도 짧게 대답했다. 우리는 그를 따라 미로처럼 복잡하고 밖이 보이지 않은 구불구불한 통로를 거쳐 공항 보안구역 어딘가로 갔는데 지상인지 지하인지 조차 모르겠다. 내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은 공포가 된다. 중국인 4명을 먼저 다른 방에 들여보냈는데 얼핏 보니 유치장 같다. (이쯤 되니 나를 방어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 대사관, 영사관과 연결해달라. 한국어 통역 없이는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 뭐 이런 말을 영작하느라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나에게는 계속 따라오라고 한다. 한참을 더 갔는데 그들의 사무실인 듯한 공간이 나왔다. 분위기는 사뭇 따듯하다. 그의 표정도 조금 전까지와는 다르게 편안함이 스쳤다. 그가 여권 항공권 바우처 여행 일정을 증명할 서류를 요구한다. 서류를 확인하면서 혼자 러시아에 왔는지를 몇 번이고 되묻는다. 나의 바우처는 마지막 날이 비어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날이라 방심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르쿠츠크에서 나의 행적을 공식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다. 일정에 대해 그가 묻는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계획이 변경됐어." 그가 곧바로 묻는다. "왜 계획이 변경됐지?" 왜 변경됐냐니... 질문도 참... 나도 꾸물대지 않고 바로 대답한다. "여행이니까."


여행이라 계획을 변경했다는 말 이외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의 대답에 그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더 이상 묻지 않고 여권과 항공권을 돌려준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내게 악수를 건네며 여자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잘 돌아가라고 인사를 하며 그는 부하인 듯 앳된 다른 경찰에게 나를 에스코트하라고 시켰다. 내 손에는 그가 기념이라며 건넨 초콜릿이 들려있었다.


러시아에서 5년을 살며 쓴 러시아 관련 논문으로 영국에서 학위를 딴 언니가 있어서 이번 여행에서의 경험을 메일로 보냈다. 언니는 아마도 내가 탄 열차가 모스크바 중앙에서 블라디보스톡 변두리로 향하는 열차여서 그들이 고향이나 집으로 돌아가는 처지였기 때문에 나에게 더 열린 마음이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공항에서의 일은... 언니도 식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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