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청동거울은 호떡 누르개

너네 나라 청동거울은 화려한 보물

by 은섬


도쿄에 갔었을 때다. 비가 내렸고 조금은 쌀쌀했다. 원래 계획은 아니지만 비가 올 땐 풍경 좋은 카페에 앉아 빗소리에 창밖을 바라보며 유유자적하는 것도 좋고, 조용히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둘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발걸음을 국립박물관으로 옮겼다. 입구 한쪽 벽면 가득 연대표가 붙어있다. 안경을 쓰긴 썼지만 난시가 심하고 시력이 그다지 좋지 않아 연대표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바로 옆 안내 데스크에 각국의 언어로 제작된 브로셔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한글 브로셔는 없다.(오래전 일이므로 현재는 다를 수 있다.) 영문 브로셔를 집어 들고 들여다보는데 입구에서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연대표가 있어 자세히 보니 한중일 비교 연대표다. 어라? 고조선이 없다. 한국은 청동기 끝무렵 정식 국가가 이름도 없이 애매하게 표시가 되어있고 철기시대로 넘어가 삼국시대부터 국가 형성 표기가 되어 있다. 중국과 일본은 구석기부터 있다. 한국이 꼴찌다. 구석기는 오히려 일본이 없는 거 아닌가? 일단 전시실로 들어갔다. 석기시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본은 발굴된 석기시대 유물이 없다가 최근에야 신석기 유물이 발견되었고 구석기 유물은 아직 출토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내가 수포자이긴 했어도 국사, 세계사 시간만큼은 안 졸았다!)


청동기실로 들어서자 청동거울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중일 삼국 청동거울이 비교 전시되어 있다. 중국과 일본은 용무늬에 꽃무늬에 화려한 청동거울이고, 같은 시기 한국 청동거울은 호떡 누르개 마냥 손잡이 하나에 줄 몇 개 그어져 있는 거친무늬 거울이다. 괜히 왔어. 커피나 마실 것을... 아주 제대로 빈정이다. 더 돌아볼 의욕을 잃고 나가려는데 기념품 코너에 내가 사랑하는 카를로 돌치(Carlo Dolci)의 비탄의 성모(Madonna Addolorata) 그림을 전사해 놓은 손수건이 진열되어 있다. 내가 애정하는 작가의 작품이라 냉큼 손수건을 사들고 밖으로 나오니 그 사이 비가 그쳤다. 산책 겸 주변을 좀 걷다가 숙소로 돌아와서 카를로 손수건을 펼쳐본다. 작품명이 성모의 엄지손가락이다. 맙소사! (카를로 돌치의 비슷한 작품들을 구분 짓기 위해 작은 디테일을 제목처럼 부르기도 하지만 그것을 정식 제목으로 표기하는 건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이 그림은 여러 비탄의 성모 시리즈 중에 엄지손가락 디테일로 구분될 뿐, 비탄의 성모라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카를로 돌치의 비탄의 성모


대영박물관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중국관, 일본관은 엄청 넓은데 한국관은 정말 작은 규모에 모 대기업이 기증한 유물 몇 개만 덩그러니 전시되어 있다. 일본에서처럼 삼국시대부터 기록되어 있고, 한반도 지도에는 독도도 없고, 동해 표기도 없다. 오로지 투지에 불타는 한국인들만이 독도 없는 지도에 온갖 필기구로 독도를 그려 넣고 동해라고 써 놓은 글씨만 장렬하게 남아있다. 박물관측에서 지우면 또 써놓고, 자꾸 써놓고, 계속 써놓고 백 천만번 쓰고 지운 흔적이 생생하다. 지도가 아주 뚫어질 지경이다. 그래서 그런가 한국관 지도 앞에 간이 의자를 놓고 박물관 직원이 앉아있다.

대영박물관 한국관_이미지 대영박물관 홈페이지


국력과 국격의 신장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어쩐지 그 할 일을 해야 할 분들은 안 하시고 오로지 국민들만이 온갖 필기구를 가지고 몸소 실천하고 있다. 순간 나도 각종 필기구 세트를 들고 다녀야 하는 건지 비장한 마음이 들어 심각하다. 투지에 불타는 국민과 질 좋은 필기구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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