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워 더 슬픈

할머니의 제주, 4.3

by 은섬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각별한 우정을 나눈 독일인 친구가 있다. 그녀는 순례를 마친 이듬해에 한국을 방문해 나와 함께 제주에 가기를 희망했다. 대학교 도서관 사서인 그녀는 친분이 있는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한국 방문 계획을 말하자, 모두들 그녀에게 제주를 추천했다고 한다. 정말 아름다운 섬이니 꼭 가보라고... 나는 그녀의 제안에 선뜻 OK 하지 못 했다. 아름다운 섬이란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기꺼이 가겠다고는 말하지 못할 나의 제주...


제주는 나의 외가다.

어릴 적 엄마를 따라 한동안 제주에 내려가 살았다. 제주는 어린 내 눈에도 아름다웠다. 계절마다 다른 빛깔의 바닷물과 바람의 냄새. 고사리 손으로 바닷가 모래를 파면 조개들이 빼꼼히 모습을 드러낸다. 할머니는 언제나 말이 없으셨다. 그저 넋두리처럼 "갈치가 갈치 꼴렝이 그차 먹었주...(갈치가 갈치 꼬리 끊어 먹었지...)" 어린 내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늘을 보며 가끔 내뱉곤 하셨다. 특히나 할아버지 제삿날이면 더욱 그랬다. 집안에 사람 소리는 없고 고사리를 삶고 고구마를 부지런히 썰어 부치는 소리만 가득했다. 제주에는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다. 바람이 거센 4월의 제주는 침묵의 섬이다.


제주 협재해수욕장_이미지 제주도청 홈페이지


할머니는 제주를 떠나 서울 우리 집 옆으로 이사를 오셨다.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섬을 노인이 되어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도 할머니는 뒤돌아보지 않으셨다. 여전히 말이 없으셨고 돌아가시기 전 3년간은 아예 입을 닫고 목소리를 잃어버리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이야기도 단편적인 것뿐이다. 자식에게도 말해줄 수 없는 한이 할머니의 가슴에 옹이 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4.3 희생자셨고, 가장 친한 동무에게 납치되어 그 새벽 총살당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할아버지는 늦은 밤 집에서 끌려가셨는데 할머니는 끌려가는 할아버지를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뜯어말리거나, 할아버지가 그 자리에서 도망치면 그들이 할머니까지 죽일까봐 할아버지는 막아서는 할머니를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잡혀가셨다. 할머니는 임신 4개월의 몸이었고, 할머니 뱃속 생명이 바로 나의 엄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목숨보다 임신 중인 아내와 뱃속 어린 생명을 지키고 싶으셨을 거다.


아직 제주엔 주검조차 찾지 못한 4.3 실종자와, 6.25 발발 후 형무소에서 처형된 예비검속자, 10년의 세월 동안 죄 없이 희생된 양민들, 그리고 군경 희생자가 있다.(이 부분은 조심스럽지만, 군경은 4.3 진압과정에서 본인들에 의해 자행된 학살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그들은 가해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명령권자를 제외한 군경의 죽음 중에는 일반인과 같은 희생도 있었다. 이념의 테두리 안에 제주의 4.3은 모든 것이 복잡하게 혼재되어 있다.)

응원경찰과 서북청년회, 군인들이 뭍에서 들어오기 전까지 4.3 초기 양상은 모든 이를 삼춘이라 부르며 가족같이 지내던 제주인들의 비극이었다. 누구 아방이 동네 누구 오라방을 끌고 갔는지, 누구 어멍이 산사람(산으로 올라간 사람)이 된 아방에게 주먹밥을 올려 보내는 것을 누구 할망이 보았는지 모두가 모든 것을 알았고, 또 동시에 모두가 피해자이며, 희생자였기에 많은 제주인들은 나의 할머니처럼 침묵하며 살았고, 70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침묵 속에 살고 있다.



제주 4.3 평화재단 홈페이지 온라인 참배

https://jeju43peace.or.kr/kor/memorial/list.do#



4.3에 목숨을 빼앗긴 사람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년 뒤, 할아버지를 잡아갔던 할아버지의 동무도 선흘 지경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나의 할아버지도, 할아버지 동무도 모두 4.3 평화공원에 희생자로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용서라는 말의 부피와 중량감은 때로 감당하기에 너무나 거대해서 우리 가족에게 제주는 늘 그리운 고향이면서도 너무나도 슬픈 섬이며, 지구 반대편보다 더 방문하기 어려운 가깝고도 먼 섬이다. 이야기를 하는 지금도 납치, 총살, 주검이란 단어가 고통스럽게 가슴을 찔러 나는 몇 번이나 손을 놓고 숨 고르기를 했다.


결국 나는 그녀와 제주에 갔다. 눈 덮인 한라산을 오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생각한다. 어쩌면 할머니는 할아버지께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입을 닫고 목소리를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오직 할아버지께만 할 수 있는 말들이 가슴속에 가득 차, 그 절절한 말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고스란히 할아버지께 가지고 가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 할망은 저 하늘 위에서 하르방을 만나 맨 처음 무슨 말을 건넸을까?

하늘에서 잘 지냈냐고 안부를 물었을까?

그날 밤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을까?

홀로 자식 키우며 사느라 고단했다 원망했을까?

평생을 그리워했노라 고백했을까?

아니면...

스물넷 나이에 친구에게 끌려가 구덩이에 총 맞아 고꾸라진 하르방을 위로했을까...?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서는 4.3을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7년 동안의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마지막 산(山)사람이 생포된 1957년 4월 2일까지 10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산사람은 4.3 초기 무장대를 말하는 것이었지만, 종국에는 살기 위해 산으로 피신한 양민들이 대부분이다.


소개령(중산간 마을 모든 주민들은 해안마을로 이주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이후 4.3은 더 이상 제주인들만의 비극이 아닌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컸던 이 나라의 비극이 되었다. 제주 4.3은 '여수 순천 10.19'로 이어졌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었고, 오늘날 아직 명칭조차 규정짓지 못해 백비로 남은 현재 진행 중인 이야기다. 그리고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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