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Camino)는 '길'을 말한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는 '성 야고보의 길'로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Catedral de Santiago)을 향한 순례길이다. 대성당이 위치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는 스페인 꼬루냐 주의 도시이자 갈리시아 지방의 수도다. 콤포스텔라는 라틴어로 별들의 들판(Campus Stellae)이라 하기도 하고 무덤(compositum)에서 유래되었다 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이곳은 넓은 들판이자 로마의 공동묘지였다.
야고보의 소명, 사명, 선교, 순교, 유해의 5가지 일화를 묘사한 부조
야고보는 예수의 12제자로 제베대오의 아들이자 사도 요한의 형이다. 같은 이름을 가진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구분하기 위해 제베대오의 아들인 야고보를 대 야고보, 알패오의 아들을 소 야고보라 부르기도 한다.
세상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라는 스승 예수의 말씀을 따라 야고보는 당시 유럽인들이 세상의 끝이라 여겼던 서쪽 끝 스페인 땅으로 떠난다. 오랜 시간 열정적인 선교를 했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씁쓸한 실패감을 맛본 야고보는 심신이 탈진한 상태에서 계시를 받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참수형을 당했다. 12사도 중 첫 순교다.
자신이 선교했던 스페인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야고보의 제자들은 그의 유해를 바다에 띄웠고, 유해를 실은 배는 다행히 스페인 땅에 도착했지만 그 후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로부터 700년도 훨씬 지난 9세기 초 펠라요라는 은수자가 커다란 별에 이끌려 별빛이 비치는 들판에서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했다. 바로 그곳에 성당을 세웠고, 이 소식을 들은 수많은 이들이 야고보의 무덤을 향해 유럽 곳곳에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두 번째 성당 모델 / 세 번째 성당 초기 모델
산티아고 대성당을 중심으로 한 옛 시가지 모습
순례자의 수가 늘어난 만큼 산티아고로 향하는 여러 루트가 생기면서 순례자의 수는 더욱 늘어났고 이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되어 9세기말 큰 규모로 성당을 새로 지었으나 100년 후 10세기말 이슬람과의 전쟁에서 소실되었고 이슬람군은 성당의 종을 전리품으로 빼앗아갔다. 또다시 100년의 시간이 흘러 11세기말 도시의 성벽을 정비하며 성당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 성당인 것이다.
12세기에 이르러 산티아고 순례가 널리 퍼지면서 순례길을 따라 수많은 수도원이 생기고 도로와 다리가 놓이며 마을이 들어섰다. 순례자를 위한 숙소와 병원뿐만 아니라 순례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사단까지 조직되어 성을 짓고 순례자들을 수세기 동안 맞이하였다. 13세기 초 갈리시아의 왕 페르디난드 3세는 10세기말 이슬람에 빼앗겼던 성당의 종을 되찾아 오는 등 번성기를 누렸다.
시간이 흘러 중세시대가 저물고 종교가 쇠락함과 동시에 외세의 침입으로 16세기말 성당은 버려졌고, 피난을 떠나면서 급하게 야고보의 유해를 숨겼지만 어디에 유해를 감추었는지 전해지지 않았다. 300년이 지난 19세기말까지 야고보의 유해를 찾지 못하다가 성당 천장을 보수하면서 야고보 사도의 유골함을 발견하였다. 이후 산티아고 순례는 스페인의 정치적 상황과 유럽의 여러 상황에 따라 부흥과 쇠퇴를 반복하다가 20세기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을 계기로 유럽 문화재로 선정되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는등 종교를 넘어 역사 문화 예술을 경험하는 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