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역사의 길

by 은섬


순례 11일 25.5㎞
출발 : 비야프랑까 몬떼스 데 오까 Villafranca Montes de Oca
도착 : 까르데뉴엘라 리오삐꼬 Cardenuela Riopico

이른 아침 호스텔 식당에서 카페 콘 레체와 빵으로 아침을 먹고 있으니 마태오도 짐을 챙겨 내려온다. 오늘은 1,100m 고지가 넘는 페드라하 Pedraja 언덕과 강을 지나 선사시대 유적지로 유명한 아따뿌에르까를 지나게 된다. 오르막이 계속되기 때문에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신발끈을 고쳐 맸다.


평지를 벗어나 몬테 데 라 페드라하의 오르막을 오르면 기념비를 만나게 된다. 키스톤 모양의 거석에는 올리브 가지를 입에 물고 날개를 펼쳐 하늘로 몸을 솟구치는 흰 비둘기가 있고 그 밑에 'MONTE DE LA PEDRAJA 1936' 글자가 있다. 스페인 내전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Monumento a los Caidos' 기념비다.

왕정 시대에서 공화국으로 넘어가는 혼란 속에 쿠데타와 혁명, 종교와 지역주의 분쟁이 팽배해지다가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벌어진다. 강대국들의 개입으로 걷잡을 수 없는 형국이 되어 치닫기를 3년, 그 모든 피해와 후유증은 고스란히 스페인 일반 국민들의 몫으로 남았다.

페드라하의 카이도스 기념비는 내전 중 학살된 300여 명의 유해가 발견된 장소에 세워졌다. 발걸음을 멈추고 묵념의 시간을 갖는다. 이념이 무엇이길래 같은 핏줄끼리 총을 겨눈단 말인가... 우리와 닮은 그들의 상흔을 보며 아무것도 새겨지지 못하고 침묵 속에 누워있는 백비와 나의 하르방을 생각했다.


페드라하 언덕을 넘어 소나무 숲을 지나 산 후안 데 오르떼가에 이른다. 페드라하 언덕이 스페인의 현대사라면 산 후안 데 오르떼가는 까미노의 오랜 도시다. 산 후안은 스승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를 따라 다리와 성당, 숙소를 짓고 순례길을 정비하며 평생을 순례자들을 도우며 살았다. 그가 안치되어 있는 산 후안 데 오르테가 성당은 일 년에 두 번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과 추분, 예수의 탄생 일화를 묘사한 기둥 조각들을 해 질 녘 한줄기 빛줄기가 순서대로 비추는데 사람들은 이를 '빛의 기적'이라 부른다.


이어지는 아헤스는 까스띠야 왕국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가 묻힌 곳으로 후에 그의 묘는 나바라의 수도인 나헤라로 옮겨지고 그가 목숨을 잃은 아따뿌에르까에는 죽은 왕을 기리는 경계석 Mojon Fin de Rey이 남겨졌다.


또한 아따뿌에르까는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인류학적 유적지로 네안데르탈인 이전의 인류 ‘호모 안테세소르’의 흔적이 바로 그것이다. 백만 년 전 인류의 이 선사 유적지는 마을 입구에서 약 3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여름에는 가이드도 있다고 한다.


선사시대 유럽 최초 인류의 유적에서부터 스페인 옛 왕국의 전투와 까미노의 역사, 이념으로 인한 내전의 아픔까지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길을 걷고 또 걸어 하루 끝에 다다른 까르데뉴엘라 리오삐꼬의 알베르게에는 커다란 벽화가 그려져 있다. 온갖 짐을 짊어진 늙고 지친 순례자... 안락함을 바라면서도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하고, 온갖 짐이란 짐은 다 짊어진 채 허덕이는 모습은 순례길 위의 이야기만은 아닌 듯싶다.



뱃속 막내를 품은 아내와
세 살배기 딸과 함께
내일을 향한 잠을 청한다

거친 바람소리를 잘못 들었는가
단잠을 깨우는 동무의 목소리
나보다 3살이나 어리지만
싹싹하고 활달한 내 동무 장 씨

조천의 작은 집을 둘러싼 시커먼 그림자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총 맞아 고꾸라진 차디찬 구덩이

살려달라 맨발로 고함치며 달려 나간
내 마누라는
뒤엉킨 주검들 속에
용케도 나를 찾아내었다

스물넷 피울음을 삼킨
그날의 오름은 알고 있었을까
나를 잡아간 내 동무도
훗날 그곳에서 고꾸라질 것을

바람을 품은 이들도 속슴허영 스러지고
모든 것을 목격한 선흘 지경은
그저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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