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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Jul 15. 2023

친구 찾아 삼십 리

왕복 10Km 쯤이야


순례 19일 20.7㎞
출발 : 레온 Leon
도착 : 산 마르띤 델 까미노 San Martin del Camino

알베르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레온 대성당 오픈 시간이 09:30이라 광장 앞 바에서 빵과 커피로 두 번째 아침을 먹으며, 등교하는 동네 꼬맹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책가방이 어깨에 메는 방식이 아니라 바퀴가 달려서 끌고 다니는데 뭐가 신났는지 노래를 부르며 깡충깡충 발을 구르는 아이도 있고, 갈지자걸음으로 미적거리는 아이도 있어서 웃음이 났다.

레온 대성당은 간결한 고딕 양식의 벽면에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수를 놓은 듯 화려함을 뽐낸다. 석양이 비칠 무렵 가장 눈부시게 빛난다고 하니 해질녘 레온에 도착한 순례자는 대성당부터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레온은 왕국의 오랜 역사를 함께 한 거대한 성벽과 여러 박물관이 많은데 레온 대성당에는 박물관(유물관) 뿐 아니라 로마 유적이 지하에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옛 왕궁이었던 이시도로 바실리카 대성당(Real Basilica de San Isidoro)도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레온대학교에서 세요를 받고 기차역을 건너 작은 바에서 점심을 시켰다. 가장 간단한 샌드위치와 카페 콘 레체였는데 정식 코스요리처럼 두껍고 커다란 디쉬에 다림질 한 냅킨, 포트, 나이프, 물잔까지... 샌드위치를 이렇게나 호사스럽게 먹자니 어쩐지 황송하다.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설쳐 피곤한 데다가 날씨마저 뜨겁고 바람도 없어 몸이 축축 늘어진다. 춥고 비가 오던 날씨가 갑자기 햇볕 쨍쨍한 여름처럼 뜨겁다. 추위도 어렵지만 더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구나... 어느 한순간도 쉬운 날이 없다. 겨우 도착한 산 마르띤 델 까미노는 UFO가 올라가 있는 듯한 회색 콘크리트 저수조 기둥이 초입부터 시선을 끌었다. 마을 입구 El albergue de Ana에 들어서자 검은 고양이가 순례자를 맞이한다. 사랑을 많이 받았는지 스스럼없이 다가와서 야옹야옹 곁을 주는 모습이 귀엽다. 뒤늦게 마태오가 합류하고 우리는 근처 Bar Los Picos에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아직 꼬마인 귀염둥이 주인 아들이 기특하게도 서빙을 한다. 주인장은 하루 밤 지나는 순례자들에게 음식이 입에 맞는지 부족한 것은 없는지 거듭 확인하였고 우리가 맛있다고 엄지 척을 드리자 답례로 앤초비 절임과 생선 구이를 서비스로 내오신다. 엔초비를 주셨으니 우리는 기분 좋게 맥주를 시켰다. 멸치엔 맥주가 정답. 마태오가 다른 테이블에 자리 잡은 마을사람들에게 내일 우리가 걸을 길을 물어보았는데 오르막이 계속 이어질 거라고 한다. 거하게 저녁을 먹고 알베르게로 걸어오는 길, 밤하늘 별들이 반짝인다. 무더웠던 하루를 마치고 시원한 맥주에 별빛을 보며 우리는 알베르게까지 달리기 시합을 했다. 달려봤자 질질 끌리는 다리가 걷는 속도와 차이가 없다. 뒤뚱뒤뚱 모양새만 더욱 이상할 뿐인지라 웃음이 난다. 방학 때 시골 외할머니 댁에 놀러 간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었다.



순례 20일 28.5㎞ (+10㎞)
출발 : 산 마르띤 델 까미노 San Martin del Camino
도착 : 아스토르가 Astorga

큰 도로를 막 가로지르는데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러 마을과 밭, 공장지대를 지나 아스토르가 대로에서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을 만났는데 한국인이다. 그곳에서 사는 분으로 순례 중 몸은 괜찮은지 안부를 묻고 또 떠돌아다니는 개를 조심하라는 당부도 하신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아스토르가 카테드랄 산타마리아 대성당에 도착했다. 핑크빛이 감도는 외관은 로마네스크양식에 고딕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더해져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카테드랄 바로 옆에는 가우디가 설계한 주교궁(주교관)이 있는데 현재는 박물관이다. 가우디의 설계는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 매우 섬세했는데 빛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인 방식이 환상적이다. 산타마리아 대성당 내부에도 박물관이 따로 있어 볼거리가 풍부하다.

아스토르가를 지나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를 막 벗어났을 무렵 아네트가 마태오의 연락을 받았다. 마태오가 알베르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으니 돌아가잔다. 다시 아스토르가까지는 5Km, 그러니까 왕복 10Km다. 함께 저녁을 먹자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한 마태오의 정성을 생각하면 10Km 쯤 되돌아가는 수고도 괜찮다. 마태오가 되돌아오는 우리를 위해 마중을 나왔다. 오는 길에 멋진 전망대를 발견했다며 우리를 안내했는데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경이 너무나 멋지다. 전망대가 있는 광장 어귀에 발레클래스가 있어 우리는 그들처럼 발레포즈를 흉내 내며 한바탕 또 웃었다. 아스토르가 알베르게는 San Francisco 광장에 위치한 옛 Siervas de Maria 수도원 건물을 개조한 것으로 2인실을 배정받았다. 여기서 스페인 삼총사와 루비, 타미라와 재회했다. 마태오는 무려 10인분의 음식을 만들어서 알베르게에 머문 모두를 놀라게 했다. 모두가 배부르고 따듯한 밤이었고, 이곳에서 '참 잘했어요' 한글 세요도 받았다. 세요가 말해 주는 것 같다. '참 잘했어요', 되돌아오기를...



나에겐 언제나 너였다
오매불망
너였다

하여 너에겐 아니었다
너에게 아닌
연연불망

한 시절
마주하지 못하고
너의 등을 바라봤다

나에게 가슴이 아닌
너는
눈부신 아름다움

등조차 네게 닿을 수 없는
나는
눈물 삼킨 서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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