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제목을 보기 전 아빠 목을 끌어안고 입맞춤을 하는 막내딸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잠시 생각했다. 가족의 헤어짐인지, 만남인지...
굴렁쇠를 들고 머뭇거리는 큰 아이를 보고 제목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이별이구나 깨달았다. 재회였다면 아이는 저렇게 표정 없는 얼굴로 한 발짝 물러서 있지 않았을 테니까. 분명 발그레 홍조 가득한 얼굴로 한걸음에 달려가 함박웃음 지으며 아빠 다리에 어쩔 줄 몰라 대롱대롱 이미 매달려있을 테니까...
Philippe Lodewijk Sadée_The Farwell (1890)
저 가장은 부인에게 어린 자녀들을 맡기고 뒤로 보이는 배에 올라 곧 떠날 것이다. 배의 규모로 보아 먼바다까지 나가는 고깃배 같다. 예상대로라면 이 가족의 이별은 긴시간이 될 것이다. 이들이 다시 만날 날은 언제가 될까? 다시 돌아올 수는 있을까? 거친 파도는 뱃사람의 귀환을 보장하지 않는다. 구름이 잔뜩 낀 잿빛 하늘과 바다의 일렁임에 불안감이 앞선다.
먼 길 떠나는 아비는 남겨질 가족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아이들에게는 아프지 말고, 엄마 말씀 잘 듣고 착하게 있으라, 아내에게는 나 없는 동안 아이들을 잘 돌보라,
다녀오겠다. 꼭 돌아오겠다. 고기 많이 잡아 올 테니맛있는 것도 먹고, 근사하게 옷도 지어 입고, 애들 학교도 보내고, 차곡차곡 돈 모아 집도 마련하고... 가족들의 꿈과 희망이 담긴 청사진을 약속했을까?
가장 견디기 힘든 마음은 그리움이다. 질타, 모욕, 무시 그런 것들은 타인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그리움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고 아프더라도 외면할 수가 없다. 내 안에서 일어난 감정을 외면하려면 나를 버려야 한다. 내가, 나는 그랬다.
이 가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비고 요한센의 크리스마스가 떠올랐다.물론 요한센의 크리스마스는 부자들의 이야기지만, 왠지 '이별'의 주인공인 가족이 바랐을 미래가 요한센의 그림과 같이 따듯한 빛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나 또한 이들 가족이 하루빨리 만나, 이렇듯 행복하고 따스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부디 무사히 돌아와 가족 곁에 머물기를, 만선하여 부인과 아이들을 호강시켜 주기를, 그리고 가능하다면 너무오랜 기간 가족과 떨어져 있지 않기를, 아비의 부재로 아이의 마음이 멍들지 않기를,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헤어져 있는 세상 모든 가족들이 길 잃지 않고 돌아올 수 있도록 그림을 바라보며 가만히 마음의 등불을켜본다.
Viggo Johansen _A Christmas Story (1935)
Viggo Johansen_Silent Night / Happy Christmas (1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