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에드가 그린 이 그림을 보았을 때 매우 따듯한 인상을 받았다. 평온한 휴일의 한 낮. 거실 난로가에 앉은 부모를 따라 나도 시선을 낮추어 보니 천사 같은 아기가 있고, 아기 앞에는 반려견이 어린 주인 앞에 충성심과 애정을 보이며 발라당이다. 이렇게 이쁘고 사랑스러울 수가. 개는 노견인 듯하다. 오랜 시간 주인 부부와 함께 했고, 아기가 태어나자 이 노견은 질투나 노여움도 없이 아기가 만지는 대로 인내심 있게 몸을 내맡기고 주인에 대한 사랑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노견이기에 이런 인내와 배려가 가능할 것이다. 아버지는 손에 신문을 들고 있지만 시선의 반은 신문에, 시선의 반은 아기에게 고정된 것 같다. 엄마는 볕에 잘 마른빨래를 개키다 아기가 균형을 못 잡고 고꾸라질까 봐 붙잡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흐트러진 아기 옷매무새를 매만져주는 것 같기도 하다.
Thomas Faed_My Ain Fireside (1858)
한참을 그들의 시선을 따라 아기와 반려견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눈을 들어보니 그제야 그들의 집이 보인다. 낡고 틀어지고 기울어진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운 가난. 숨길 수 없는 가난이 내 눈에 들어오자 이들의 평온한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고단한 삶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행복, 희망, 따스함. 아버지는 신문에서 무엇을 읽고 있었을까? 구인란을 찾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기를 바란다. 적어도 그가 안정된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기를, 저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가족의 따듯한 시간을 위해서 말이다.
아래는 키에리치의 그림으로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이야기다. 큰 오빠가 무서운 가면을 가지고 어린 동생을 놀리고 있다. 둘째는 이 상황을 즐기며 웃고 있지만 막내는 겁에 질려 작은 오빠를 꼭 붙들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표정이다. 이 그림에서도 아이들의 장난스러움과 가난이 대비되고 있다. 아이들의 옷은 구멍이 나 있거나, 천을 덧 대어 기웠고, 그나마도 얻어다 입힌 옷이어서 몸에 맞지 않고 헐렁하니 크다. 신발의 앞코도 다 까져 발가락이 나올 지경이다. 집 또한 낡아 해진 옷처럼 벽돌 위에 바른 회벽이 다 벗겨져 벽돌 틈 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들어 올 것이다. 남루한 삶이지만 아이들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천진난만하기만 하다.
Gaetano Chierici_The Mask (1866)
이 장난의 결말은 어떻게 됐을까? 정답은 엄마에게 "이놈!"하고 혼나기. 막내가 무서움을 참지 못하고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한테 달려가 일렀다. 엄마는 할 일이 태산이라 바쁜데, 놀리는 오빠의 얼굴은 엄마가 "이놈!" 해도 짓궂게 웃고 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리는 오빠는 정말 못 말리는 꾸러기인 듯하다.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한 발 내밀고 있는 왼쪽 신발끈은 풀려 있고, 뒷 쪽 오른발 주황 양말은 흘러내려 있다. 커다란 아빠 모자를 쓰고 가면으로 얼굴을 덮어 동생을 놀렸지만,가면 뒤 꾸러기 표정에 엄마는 "이놈!" 말고 다른 야단을 못치셨을 것 같다.
Gaetano Chierici_The Mask (1874)
부엌 살림살이는 성한 것이 하나 없다. 문에 얹혀있는 천 조각도 다 낡아 너덜너덜, 엄마의 앞치마도 너덜너덜, 의자도 너덜너덜. 그래도 엄마는 가족을 위해 날마다 음식을 만들고, 매 시간마다 꾸러기 아이들에게 '이놈!'하고, 아이들은 언제나 아웅다웅 놀리고 싸우며 해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