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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Jun 18. 2022

그림, 성경 속 감정이 폭발하다

분노와 폭력_조토, 블로흐, 미켈란젤로, 카라바조


미리 말씀드리면 이번 글과 다음 글, 두 편에 걸쳐 소개할 작품들은 장르화는 아니다. 보시다시피 종교화(역사화)인데 이전의 종교화와는 확연히 다르게 인간적인 요소가 담뿍 담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작품들을 소개한다.


소개할 작품은 너무도 유명한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경당 벽화 중 하나다. 이 그림을 봤을 때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아.. 조토... 이 사람을 어찌하면 좋지...? 조토! 주먹질하는 예수라니! 이건 정말이지 조토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야."  


종교가 기독교인 분은 딱 보고 그림이 어떤 이야기인지 아시겠지만 종교가 다른 분들을 위해 잠깐 상황 설명을 하면, 유다인들은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율법에 따라 로마 황제의 초상이 새겨져 있는 일반 화폐를 성전에서 사용하지 못하고 성전 안에서 사용 가능한 돈으로 환전을 해 제물로 바칠 짐승들을 샀다.


환전상과 사고파는 이들로 성전이 소란한 것을  예수는 기도하는 곳을 장사하는 곳으로 만든 것에 탄식하며 이들을 쫓아냈다. 이 날의 사건은 '성전을 정화하시다'라는 제목으로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4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탁자와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루카 복음서는 '장사하는 이들을 쫓아냈다.'라고 간단히 서술되어 있고, 요한 복음서에서만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라고 다른 복음서에 비해 조금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Giotto Di Bondone_Cristo scaccia i mercanti dal Tempio (1303-1305)


이 성경 속 이야기는, 기도하는 곳이라는 성전의 근본 목적과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예수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한 것에 초점이 맞춰졌고, 분노나 폭력은 크게 부각되어 있지 않다. 그냥 쫓아냈다, 탁자와 의자를 엎었다 정도이고, 채찍이라는 도구의 등장은 요한복음이 유일하다. 하지만 조토는 그림에서 주먹질이라는 행동으로 예수의 분노를 극대화시켰다. 도구의 사용보다 주먹으로 직접 살과 뼈가 부딪치는 타격은 훨씬 감정적이다. 그림 속에서 예수는 그냥 주먹질하는 척 위협만 한 것이 아니라 왼손이 상대방을 향해 앞으로 뻗어있고 주먹을 쥔 오른손이 뒤로 한껏 당겨져 있어 활시위를 바로 놓아 쏠 것만 같이 주먹을 날릴 역동적인 자세다. 진짜 때렸을 것만 같다.


예수의 등 뒤에는 제자들이 있는데, 어린아이 둘이 놀라 한 아이는 예수의 제자 옷자락 속에 숨고, 제물로 바칠 비둘기를 안고 있는 아이는 몸을 움츠린 채 곁눈으로 보고 있다. 예수 앞에 엎어진 탁자는 꼭 네 다리를 쭉 뻗고 뒤집어져 죽은 동물의 사체 같이 느껴진다. 오른팔을 들어 방어하는 사람, 양손을 들어 놀라움을 표현하는 사람, 누가 들을까 봐 얼굴을 바짝 맞대고 수군대는(예수를 없앨 모의) 사람들 모두에게서 당혹감, 두려움, 비열함과 같은 인간적인 감정이 너무나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앞발을 들고 뛰어오르는 뿔 달린 양도 살아있는 것 같다. 이전의 다른 종교화에서는 볼 수 없는 감정의 표현이다.  


아래 그림은 블로흐의 작품이다. 이 작품 또한 분노가 표출하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이 그림에서 주인공은 예수가 아니라 옆에서 예수를 조롱하는 군인인 것만 같다. 저 군인은 아마 예수와는 관계가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로마 군인이고, 예수는 이제 막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개인적인 감정이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사력을 다해 예수를 모욕하고 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분노케 했을까? 경멸하는 저 눈빛, 조롱의 말을 내뱉는 일그러진 입모양, 콧잔등에 주름이 잡힐 만큼 진심으로 위협하는 표정이 압권이다. 예수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관람자를 향해 있다. 예수의 저 눈은 또 무얼 말하고 있는 걸까?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옆 사람이야.)


Carl Heinrich Bloch _Christ with Mocking Soldier (1880)


아래 작품은 그림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그 유명한 '다비드' 상이다.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데, 다비드는 성경 속 '다윗'과 동일인물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바로 그 양치기 소년? 다비드가 소년이라고? 어릴 적 그림성경을 먼저 접했던 나는  소년의 모습으로 그려진 다윗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어서 미켈란젤로의 이 멋진 다비드가 내 머릿속 다윗과 동일한 인물로 인식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말도 안 돼. 이 정도의 에너지를 가진 다비드라면, 골리앗 따위는 충분히 이기고도 남겠어!"


결의를 다지는 꿈틀거리는 눈썹과 살아있는 눈매, 적에게 단단히 고정된 눈동자, 골리앗을 쓰러트릴 유일한 무기인 무릿매를 짐짓 여유 있게 어깨에 걸치고 있는 왼손과 상반되게 돌팔매질을 할 돌을 꽉 쥐고 있어 혈관이 강하게 툭 튀어나온 오른손, 마구 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으로 팽배한 근육, 골리앗과 전투를 하기 전 긴장감이 다비드의 온몸에 표현되어 있다.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_David (1504)


성경에서는 다윗을 양을 치고 비파 연주를 하는 여덟 형제 중에 막내, 청동 투구와 갑옷이 무거워 벗어버리고 골리앗 앞에 선 볼이 불그레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유약한 소년으로 표현했지만, 미켈란젤로는 이렇게나 에너지 넘치고 거대한 유일무이한 다비드로 탄생시켰다.


아래 그림이 우리에게 익숙한 소년 다윗의 이미지다. 카라바조가 그린 것인데 소년의 모습인 다윗이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지만, 조금 다른 면이 있다면 대부분의 그림에서 다윗이 골리앗에게 승리한 후 위풍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반면 이 그림에서 다윗은 슬프고 연민에 찬 표정이다.


Caravaggio_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1610)


여기에는 카라바조 개인에 대한 스토리가 있는데, 이 그림에서 다윗의 얼굴과 골리앗의 얼굴 모두 카라바조의 초상이다. 다윗은 젊은 시절 카라바조의 모습이고, 골리앗은 도망자의 신분인 그의 모습이다. 카라바조는 살인을 저지르고 수배자가 되어 도망치는 가운데 이 그림을 그렸다. 교황에게 사면을 청하기 위하여 회계하고 뉘우치는 마음을 그림에 담았지만, 카라바조는 이 그림을 교황에게 끝내 하지 못하고 몇 주 뒤 병사했다. 그림 속에서 스스로를 처형한 카라바조, 처형당한 자신을 연민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그림... 명암이 극대화된 그의 그림처럼 그의 삶도 명암의 대비가 뚜렷하다. 그는 이 그림을 어떤 마음으로 그렸을까? 그의 회한이 다윗이 들고 있는 칼에 새겨져 있다. Humilitas occidit Superbiam.(겸손은 교만을 죽인다.)



 [조토] 그림 출처 : haltadefinizione

 [블로흐/미켈란젤로/카라바조] 그림 및 이미지 출처 : Museo del Prad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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