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을 여행할 때였다. 태국은 필리핀과 함께 동남아 여러 나라 중에서 경제 성장의 속도가 빠르고 규모도 큰 축에 속한다. 농담 삼아하는 얘기가 있는데 그 나라의 닭 요리를 먹어보면 대략적인 경제 사정을 가늠할 수 있다. 닭의 크기가 클수록 경제 사정이 괜찮다. 싱거운 소리 같지만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직접 맛보며 체득한 매우 손쉽고도 의외로 정확한 가늠자다.
소규모 식품점(동네 마트, 가게)의 우유 유통 상황을 봐도 산업화의 구축 정도를 대략 알 수 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우유를 사 먹을 수 있어서 대수롭지 않지만 아직 그렇지 못한 나라들이 많다. 상하기 쉬운 우유를 전국 방방곡곡 신선하게 냉장 유통을 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까다로운 공정과 비용이 든다. 그래서 여의치 않은 곳들은 신선을 유지해야 하는 흰 우유보다 요거트, 치즈 같은 발효 형태나 버터, 분유, 연유, 멸균우유와 같은 가공된 형태가 많다.태국은 닭도 크고 우유도 쉽게 사 먹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단편적이긴 하나 어느 일정 부분에서 잘 살고 있고 발전을 이루어낸 나라다.
태국의 경제력에 걸맞은 커다란 닭요리를 맛있게 먹으멍 놀멍 쉬멍 해도 좋을 것을 가만있지 못하고 태국 국립미술관으로 향했다. 마침 젊은 작가 초대전을 한다.
방콕 국립 미술관 로고_이미지 방콕 국립 미술관
나는 고전도 좋아하지만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도 좋다. 경험한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살며 미래를 고민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다. 닭과 우유가 경제 상황과 산업화정도를 시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당에 세워진 특별전 부스로 들어갔다. 어둡고 스산한 것이 머리가 쭈삣 선다. 알 수 없는 소음과 비명과도 같은 음악, 혼란스러운 조명, 기괴한 설치 작품들. 태국의 젊은 작가들은 현재와 미래를 위험하고 불안한 공포로 규정했다. 나름 성공적으로 산업화와 도시화를 이루었고, 관광수입의 규모도 큰 태국의 이면은 보이는 것만큼 역동적이지 않은 듯했다.
암울한 시대와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혼란함, 공포의 삶이다. 나는 놀이공원 귀신의 집을 탈출하듯 부스를 빠져나왔다. (휴우! 심호흡 먼저 하고! 나는 호러물에 정말 약하다. 공포 영화는커녕 스릴러 드라마도 못 본다. 심상치 않은 배경음악이 깔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귀를 막고 두 눈을 감아야 하는데 어릴 적 인기 TV 프로그램이었던 '전설의 고향'을 끝까지 본 적이 없다. '볼 수 있어!' 주먹 꼭 쥐고 호기롭게 보기 시작하다가 으스스한 음악에 결국 채널을 돌린다.)
놀이공원 귀신의 집(한국민속촌 홈페이지)_사진만 봐도 무서워 ㅠ_ㅠ
날도 더운 데다가 예상치 못한 공포체험에 기운이 쏙 빠져숙소로 돌아왔다. 태국 젊은이들의 미래가 공포라면 나의 미래는 어떤가? 침대에 맥없이 누워 고민에 빠졌다. 나의 미래는 중간에 사고나 질병없이 고이 늙는다는 것을 전제로99% 독거노인에 고독사다. 남은 1% 경우는 독거노인이지만 운 좋게 시설이나 병원에서 고독사만은 면하는 것. 나의 죽음이 고독사로 한참만에 발견되어 유품 정리하는 분들께 혹여 민폐가되는 것은 아닐지 진심 걱정이고, 진심 공포다. 통통한 닭요리나 먹으멍 놀멍 쉬멍 할 것을 가만있지 못하고 돌아다녀 태국 젊은이들의 고뇌와 나의 고독사까지 걱정하는 밤이 되었다.
2022년 현재 국가통계포털(kosis)에서 독거노인에 대한 통계를 찾아보면 최신 자료가 2020년 통계다.
국가통계포털 (kosis)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해마다 독거노인 수가 5% 이상 증가하고 있으며, 지난 10년간 시도별 무연고 시신 처리 현황도 2012년 약 1,000 건에서 2021년 3,000건이 넘었다. 고독사 연령도 노인뿐만이 아니라 청장년의 비중이 늘어가는 추세다.
2020년 3월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고독사 예방법)'이 제정되어 2021년 4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이 법은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ㆍ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을 '고독사'라 정의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개인적ㆍ사회적 피해 방지와 국민의 복지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국민은 고독사 위험에 노출되거나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으며, 고독사 위험자를 발견한 경우에는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각 지자체에서 고독사 예방을 위한 정책을 수립한다고 보도되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싶게 대부분 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에 불과할 뿐 세부내용은 거의 없다. 아직까지 고독하게 죽어가는 이들에게까지 돌아갈 복지는 순번이 도래하지 않은 까닭일까? 아무리 죽으면 끝이라지만, 인간으로 존엄하게는 죽어야 하지 않을까...? 국가가, 사회가 홀로 살다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을 위해 다각적인 고민과 방도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고독한 누군가가 고독한 임종을 홀로 맞이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Well Being'을 넘어 'Well Dying'을 원할 것이다. 나도 진심으로 'Well Dying'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