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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Dec 03. 2022

그림, 그럼에도 영위되는 삶 속에 존재하다

에필로그_글벗들과 함께 한 시간


고마운 분들께 좋아하는 그림을 보여드리고자 시작한 '그림, 보잘것없는 삶을 그리다' 연재를 마치며, 긴 시간 함께 해 주신 벗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저 그림을 함께 감상하고픈 작은 마음이 여러분의 관심 덕에 많은 이야기를 담게 되었습니다. 아직 저는 일상의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기만 합니다. 버스를 타고 종로에 나간다거나, 친구와 맛있는 빙수를 사 먹는 그런 소소함을 해내기 위해서는 제 기억의 다이얼을 15년쯤, 혹은 20년, 25년 전으로 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세상 밖으로 온전하게 나온 것은 아니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은 더 난감하지만, 곧 할 수 있을 거라는 예감과 기대에 몽글몽글 막 나온 따듯한 두부 같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잊힌 시간들이 얼마나 귀한지, 함께 먹는 빙수가 얼마나 달콤한지, 고맙다는 말이 얼마나 울컥한 것인지 알았습니다.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가 너무나 사랑하는 글을 주고받으며 글벗이란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소중한 시간 속에 시나브로 젖어든 저의 이야기로 에필로그를 대신합니다. 샤갈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다시 꿈꾸게 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위태롭게 벼랑을 건너는 이에게 마음의 그물을 엮어 말없이 발아래 쳐주는 사람들. 떨어지면 죽음뿐이니 정신 바짝 차리라는 날카로운 경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져도 괜찮다고 다들 그렇게 떨어지기도 하면서 벼랑을 건넌다고, 비록 까마득하게 깎아지른 천 길 낭떠러지라도 튼튼한 그물을 쳐 놓았으니 괜찮다 걱정 말라 초라한 어깨를 쓸쓸한 등을 두드리고 쓸어주는 이들이 있다.


Anton Romako_Gebirgsbäche überqueren (1882)


밥 먹었어?라고 묻는 인사가, 같이 맛있는 거 먹자는 그 한마디 말이 얼마나 따듯하고 고마운 의미인지 뒤늦게 깨닫고 마음이 뭉근하게 묵직하다. 밥을 먹는다는 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떡볶이를 먹다가 마지막 하나 남은 밀떡을 슬쩍 그 사람 앞으로 밀어주는 것, 타지 않게 신경 써 노릇노릇 구운 삼겹살을 앞접시에 놓아주는 것은 단순한 음식 섭취를 넘어 힘든 이 세상을 함께, 같이 살자는 것과 같다. 떡볶이가, 삼겹살이 그리 절절할 일이야? 내게는 그 무엇보다 절절했기에 여름이 시작되던 그 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 누워 방울방울 고장 난 수도꼭지에 하얀 바람이 밤새 불었다. 그 어떤 조언이나 위로보다 마음에 온기를 더하고 새 살이 돋게 하는 소리 없는 마음들. 브런치에서 글을 통해 만난 마음들은 한결같이 나에게 삶을 살아가라 다그치지 않았다. 그저 넘어진 내 손을 말없이 잡아주고 괜찮다 괜찮다, 세상 모든 일이 알고 보면 다 별일 아니라는 듯 쓸리고 까진 흙투성이 무릎을 무심하게 탁탁 털어줄 뿐이었다.


그물을 쳐주고, 같이 밥 먹자 소식을 전하고, 그저 괜찮다 다독이는 마음은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의 옹알이를 알아듣고, 외국인의 서툰 말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마음과 같다. 작법을 배우지도, 작문 경험도 없는 나의 글은 아기의 옹알이 같기도, 외국인의 서툰 말과 같았을 테지만 글의 완성도가 아닌 그 속에 담긴 마음을 보고 귀 기울여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고백하자면, 라이킷 알림이 울리고, 달아주신 댓글을 읽고, 구독해 주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계속 글을 써도 된다는 허락인 양 비루한 마음에 물기가 돌았다.


오늘 하루도 나는 또다시 위태롭게 벼랑을 건너지만, 떨어져도 수많은 그물들이 나를 받쳐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용기를 낸다. 그렇게 벼랑을 건너면 나 또한 온 마음을 다 해 튼튼한 그물을 짜, 벼랑 끝 아스라이 걸린 다른 그물들 아래에 나의 그물을 펼쳐 놓을 것이다. 누구든 안심하고 그 벼랑을 건널 수 있도록.


이중 삼중 여러 겹으로 빼곡하게 펼쳐진 마음들로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죽을 때까지.


Marc Zakharovich Chagall_The reader, The student (1925)


Marc Zakharovich Chagall_The Dream (1939)




그것은...

당신의 바람(望)이었을까요?

바람이 바람(風)이 되어 불었습니다.


그것은 그저 말없이 불고 또 불어서

죽고 싶지도 살고 싶지도 않던 나를

삶 쪽 가까이에 두었습니다.


외면했던 삶을 바라봅니다.

내가 놓쳤던, 놓아버렸던 여름들을...

인생에 몇 번의 여름이 더 남았을까요?


당신의 그것은...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제 여름의 시작입니다.




[Anton Romako] : Un viaje a través de la Historia del Arte

[Chagall] : Marc Chagall , His Life and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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