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은 이모를 좋아한다. 내가 어린 시절에 본 이모는 뭐랄까, 조그맣고 날렵하고 제 나름의 사냥도 썩 잘하는 새 같았다. (나는 원래 동물이나 식물로 대상을 기억하는 습관이 있다) 까맣고 윤기나는 머리칼은 늘 짤막하게 잘려져 이마를 반쯤 가렸다. 보기 드문 숏컷의 여자.
“여자는 언제나 날씬해야지.” 통통한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닌 걸 알아서 나는 상처받지 않았다. 이모 스스로에게 건네는 주문이었다. 잘록한 허리를 굵은 벨트로 한껏 조이고, 언제나 잘 다린 블라우스를 입고. “이모는 밤마다 마당에서 줄넘기를 한단다. 여자는 날씬해야 하니까.”
이모는 동대문 쇼핑센터에서 옷을 팔았다. 옷은 아주 잘 팔렸을 거다. “이 집 옷 말고는 못 입겠어. 감각이 참 좋아.” 단골이 많았다. 이모부와 세 딸이 그 돈으로 먹고 입고 학교를 졸업했다.
“이모는 원래 꿈이 화가였어.” 이모 집에 놀러갈 적마다 이모는 엄마에게 자신의 유화와 수채화, 언젠가는 빨강과 검정을 섞어 굵고 거친 실로 뜬 숄더백을 선물로 주었다.
“이모는 손으로 하는 건 다 잘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의 목소리가 몹시 낮아서 좀 의아했던 것 같다. 칭찬을 하면서 엄마는 왜 울 것처럼 보이나. 엄마와 작은이모와 큰이모의 어릴 적 꿈을 말할 때마다, 나의 엄마는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몇 잔 마신 상태로 보였다. 어딘가로 자꾸만 멀리 갔다.
“엄마는 발레를 하고 싶었어. 무용 선생님이 경자는 얼굴도 이쁘고 몸선도 이뻐서 꼭 춤을 춰야 한다고 했어. 큰이모는 정치인이 됐어도 좋았을 거야. 이모는 그 시절 여자치고 키도 되게 크잖아.”
작은 이모는 이모의 옷가게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밤낮이 뒤바뀐 일을 해서 그래. 이모부가 쫓아다니지만 않았어도.” 인과관계가 없는 말이었지만 대충 이해가 됐다.
누군가는 이모가 김치나 짱아찌를 좋아해서 그랬을 거라 쑥덕이기도 했지만, 사람이 이십년 가량 밤에 잠을 못자고 옷을 팔고 낮에도 잠을 못자고 집안일을 하면 그렇게 된다. 중풍이 온다. 이모는 장애인 등급을 받았다. 쉰도 되기 전이었다.
얼마 전 이모는 쉼터에 갔다. 평생 이모를 괴롭힌 이모부가 자꾸만 목을 조른다고 했다. “내 동창들하고 바람 폈지, 이년아. 내가 늙었다고 모를 줄 알아.” 문을 잠그고도 잠을 영 못 잤다. 이모는 평생 단 잠을 잔 적이 없다. 밤에는 돈을 벌다 병을 맞았더니 이제는 밤에는 공포에 떤다. 마감 때문에 하루만 잠을 설쳐도 ‘죽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나로선 상상도 못하겠다. 하루도, 제대로, 자 본 적이 없는 삶.
“밥도 잠도 똥도 굿이야.” 이모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울다가 웃다가 친구에게 말했다. “이게 진짜 말,인 것 같아.” 인간에게 언어라는 게 존재해서, 이모가 자신의 상황을 또박또박 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신문기사에 이모가 실린다면 60대 빈곤층 장애인일 것이다. 그러나 이모는 이런 문장을 써서 글로 먹고사는 나를 반성케 하는 사람이다. ‘밥도 맛있고 잠도 잘 자고 배변활동도 괜찮아, 그래서 좋다.’ 라고 고상 떨지 않는, 실용적인 이모. 이모는 언제나 좀 새침하고 단호했었지. 띵동. 문자가 또 왔다. “인생 좀 역겹긴 하지만...”
그 경지를 나는 상상도 못하겠다. 내 삶이 조금 역겹지만, 의심하고 괴롭히는 사람으로부터 도망쳐서 (그래도 오늘 하루는) 굿!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지. 어려운 단어 하나 섞지 않고 한 인간의 연대기를 한큐에 정리하는 저 명쾌함.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이란 건 하지도 못하고 내내 웅크리고 있다가 누군가 “괜찮아?”라고 물으면 우엉 하고 울어버리는 나같은 어정쩡한 인간으로서는 따라잡지 못할 저 정리력.
역시, 내가 보는 눈이 있다.
나는 작은 이모가 정말 좋다.
이모의 말은 더,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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