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증 환자를 편하게 해 준 다정한 말들
“그냥 ‘다녀와’라고 해주면 안돼?
아니야. 아무 말도 안 하면 안 될까?
아니야, 아니야. 망치고 와도 좋다고....말해주면 안 될까?”
구두 주걱을 펌프스 안으로 넣다 말고 외쳤다. 기다란 주걱을 흔들며 말했기 때문에 흥부 뺨을 후려치는 놀부 아내 같아보였을지도 모르겠네. 별안간 벼락을 맞은 엄마가 놀랠까 염려했지만, 그녀는 개콘 재방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심히 대답했다.
“알았어. 하여간, 별나.”
첫 회사 입사 면접을 보러 가던 길인지, 중요한 프리젠테이션을 앞두고 밤을 샌 날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여간에 별난 사람은 뭔가를 참 잘하고 싶을 때마다 미간을 찌푸렸다. “잘하고 와!”라는 격려를 들으면 위축되는 건 나 뿐인 것 같아 외로웠다.
“기대할게!” “믿어요!” “잘하고 와!”라는 말을 들으면 굳은 표정이 되는 사람들을 몇 안다. 망원동 앤트러사이트에서 흔을 만났다.
“잘하라는 응원을 받으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불안해지지 않아요?”
소곤소곤 말하지 않으면 서버가 와서 주의를 주는 절간 같은 그 카페에서, 박수를 치고 발을 구르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
그는 나보다 한수 위였다. 출판사 편집자로 취직에 성공해 고향에 갔을 때, 익히 아는 그 반응을 접하고서야 마음이 편해졌다는 거다, 세상에나.
‘니깐 놈이 책은 무슨 책이냐, 너 뽑은 출판사도 알 만하고, 니가 만드는 책도 알 만하다. 우리 공장에 취직이나 하라’는 친척 어른들. 소줏잔을 돌리며 건네는 거나한 말들에 그는 느꼈다 했다.
“나는 영원히 이 소속이구나.”
아이고, 촌스러운 당신. 우리는 에스프레소 두 잔을 더 시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파주-망원을 오가는 출판 힙스터인 흔. 매너는 언제나 세련되고 태도는 언제나 사려깊은 그. 그런데 왜, 세련된 축하는 부담을 느끼는 거야? "정말 멋지다. 더 멋져질 거야."란 말을 들으면 왜 긴장하는 거야? '서울서 망하믄 여기 와 땅이나 파라'는 말에 안정을 느끼는 건 대체 왜 그런 거야?
농담삼아 말했다.
“나는 종종 번역체로 마음을 전해. ‘나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미드 속 모범 가정의 백인 부모처럼.”
그건 거부하지 않았다. 흔은 그것도 좋다 했다. 잘하라는 말과 달리, 기대가 섞이지 않아 괜찮다고 했다. 나는 또, 동질감을 느꼈다. 하여간, 자네도 별나.
잘하라는 응원을 받으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불안에 떤다. 상대는 사교적 대화를 한 것 뿐인데, 그러니까 ‘그냥 한 말’인데, 그 말을 부풀려 해석한다. 그 기대를 모두 충족시켜야 할 것 같은데, 혹시 그러지 못할까봐 불안해지는 거다. 불안이 시작되는 거다.
그냥, 그냥 하는 소리다. “잘하고와.”는 “네가 잘하고 오지 않으면 저녁밥을 주지 않을 것이며, 너에게 몹시 실망해 불면에 시달릴 것이다”라는 선언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나누는 말이다. “Good luck”같은 것이다. 이걸 깨닫는데, 왜 20년이 걸렸지, 내 참.
글쓰기 선생으로 학생들을 새로 만날 때마다 질문했다.
“글을 쓰자고 마음 먹었을 때 가장 방해가 되는 기분은 뭐에요?”
“잘못 쓰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요.”
정말 깜짝 놀란 대답도 있었다.
“내가...글쓰기를 배울 주제가 되나, 싶은 생각에 수업 신청을 망설였어요.”
볼펜을 두 개나 떨어뜨릴 정도로 놀랐으나, 곧 이해했다. 요가나 수영 수업에서 혼자만 방향이 틀려서 ‘남들에게 폐가 되는 건 아닌지’하는 염려를 매번 하는 나의 작은 마음을 떠올렸다. 200% 이해가 되었다.
몸과 마음에서 두려움을 걷어내면 한결 가벼워져서 점프도 하고 멋진 착지도 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수업 때마다 반복해서 하는 말.
중요한 강의, PT 때마다 다정한 말을 해주는 사람을 데리고 다닐 순 없다. 그럴 땐 거울을 보고 영어로 말한다. 어색한 번역체로 옮겨보겠다.
“누가 멋지지? 바로 너지. 너는 멋지다. 너는 강하다.”
정말 떨리는 날에는 이렇게도 한다. 미드 <오피스>의 너드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연기한다.
“망칠 수도 있지. 망쳐서 사람들이 조롱할 수도 있겠지. 돌아서는 네 등에 휴지 조각이나 지우개가 던져질 수도 있지. 그럼 펍에 가서 올드팝을 들으며 위스키를 마시자. 언제나 그랬듯이...
그리고 다음날 쓰레기상태로 침대에 누워서 이민 계획을 세우자.”
한국어로는 넘 스스로 비웃기고 같잖기 때문에...영어로 메소드 연기를 해야만 한다.
친구나 가족이 뭔가 걱정하거나 두려워 할 때마다 외친다.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수록 더 크게.
내 사랑을 증명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없어서, 그렇다.
나의 다정은, 제발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계속 외치는 것 뿐.
당신들이 잠깐이라도 웃어버릴 때까지, 말을 하고 또 할 것이다.
세련된 화술 같은 거,
그런 것 따위,
나는 몰라!
요즘 가장 도움이 된 말은 이거다.
“여자가 큰일 하는데 실수도 좀 할 수 있지!”
“여자 실수는 병가지상사!”
“여자답게 하고와. 강하고 대담하게, 너답게.”
태어나서 이렇게 멋진 격려는 처음이었다. 페미니즘이 짱이다.
엄마와 이모와 친구와 동생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보통은 크게 웃으면서도 누구 하나 '대체 무슨 소리야?'하는 사람은 없다. 본능적으로 다 알아챈다.
나 같은 불안증 환자를 한 명 더 안다. 우리 집에 에어비앤비 장기투숙자로 있다가 한국 대학에 연구원이 된 러시아 친구 니키타다. 스물 아홉인 니키타는 영국에서 오래 유학을 하고 한국 힙합댄스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한국 취업에 성공할 정도로 능력이 넘치면서, 별 것도 아닌 일에 긴장한다. 초조해하는 그 모습이...거울 보는 것 같다.
한번은 그가 연구원 취업을 위해 자기 전공에 대해 발표를 할 일이 있었다. 한잠도 못자고 준비를 했는지 빨개진 눈으로 우리집에 달려왔다. 발표 자료의 한국어 검수를 위해 온 것이지만, 니키타는 우리 고양이를 만지는 일에 더 몰두했다. “마음이 편안해져요. 미코의 따뜻한 털.”
분명히 저 불안증 때문에 머리칼이 다 빠진 걸거야. 아직 삼십대도 되지 않았는데, 니키타의 머리를 맨질맨질한 돌맹이 같다.
그럼, 또 시작해야지 내가!
“누가 쿨하지요?”
니키타는 막 웃었다. “저,입니다.”
“누가 혼자 타국에서 자기 앞길 개척할 정도로 독립적이고 강하지요?”
“니키타 개브들린입니다.”
나는 박수를 막 쳤다. 아직 면접날도 아닌데, 긴장 때문에 젖어버린 셔츠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내일 학교에 가서 거울 보고 말해,
헤이, 니키타. 너는 멋져, 너무 멋져, 세상에서 제일 멋져.
나는 매 수업마다 화장실에서 혼자 외치고 들어간다니까 (뻥이다!)"
"진짜? 매일? 아직도?"
"그럼! 매일! 아직도!"
니키타는 취뽀에 성공했다. 작지만 근사한 방도 구했고 '한국 직장....휴....이해 안되는 일 너무 많아...'하며 매운 떡볶이를 막 먹을 정도로 스트레스도 받고 있다. 차근차근, 한국에 아주 잘 적응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자주 카톡을 보낸다.
불안해지면 우리집 놀러와, 고양이 만지러.
(고양이 만지는 건 공짜니까,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