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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Oct 06. 2018

헤어질 땐 잘 지내라는
인사대신"가~"라고 했다   

밥은 먹었어? 일은 잘 되냐, 들어가! 

오늘 하루 잘 지냈냐는 간단한 인사면 충분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구.      

커다랗고 둥근 눈에 물이 맺혔다. 

2시간 동안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맹렬히 다툰 끝에 나온 결론은 그랬다. 


어느 불금, 저녁을 먹으러 나가려다 불이 붙었다. 외투를 입은 채로 서서 논쟁으로 집안을 후끈하게 달궜다. 하루 종일 우리의 대화가 허공에서 거칠게 부딪쳤었다. 고양이가 조각 조각 찢어놓은 휴지조각처럼 마음이 부스러져 있다고 느끼는 걸 참고 지내면, 늘 그런 식이다. 긴장을 풀면 기어코 쾅! 어이없는 이유로 싸움은 시작된다. 


서로가 가진 언어로 풀어보려고 갖은 애를 다 썼지만, 대화는 맴맴 돌았다. 단 하나의 원인은 따로 있었으니까. 복잡한 마음 한 켠에 맺혀있었기 때문에.      

“오늘을 잘 지냈냐고 묻지 않는 건 나를 슬프게 만들어. 내 하루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자주 너는 나를 자세히 보지 않아. 집에 와서도 스마트폰을 보고 모니터를 보고. 

네가 일과 일상에 열중하는 건 좋아. 

하지만 귀가 인사를 하고, 잘 지냈냐고 묻고, 하루를 이야기하는 데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잖아. 

서로 진심으로 인사를 하지 않으면 외로워져, 자꾸만.” 

B가 이 문장을 고스란히 다 말하진 않았지만.      


그는 긴 말하지 않는다. 다 식은 얼그레이를 한 모금 홀짝인 뒤 덧붙였다. 

“매일 저녁 한 번의 안부인사면 돼. 진심이 담긴. 필요한 게 없어, 그것 외에는.”      


누군가 “나에게 필요한 건 너의 마음 뿐이야.”라고 말하면 울컥 눈물이 난다. 나는 마구 달려간다. 이 자식, 내 급소를 어떻게 알고. 나는 다급히 외쳤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정말 정말 미안해. 문 열어! 마음 닫지 마! 얼른 열어! 나 이제 깨달았는데!     


소파에서 일어나 다양한 목소리로 계속 Sorry를 외쳤다. 마음이 다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아, 몸으로 Sorry를 빠르게 그렸다. 미안해지면 나는 자꾸 어린이가 된다. 어른으로서,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채 못 배운 탓일까.      


웃음을 참으려고 실룩거리는 그의 뺨을 보면서 조금 안심이 됐다. 차를 한 주전자 더 만든다는 핑계로 부엌을 가 몰래 메모 어플에 저장했다. ‘귀가하자마자 ‘Did you have a good day?’ 질문할 것. 아니다. 불어로 말하자. 더 짧으니까’  프랑스어로 안부인사는 두 음절이다. ‘싸바?’ 대답도 무척 짧다. ‘위!’ 되물어보는 것도 쉽다. ‘싸바?’ 하거나, ‘에투와?’(Et toi=And you? 너는?) 하면 된다. 약간 성의없어 보이지만, 쉬우니까 그냥 외우자. 싸바? 싸바!      




나는 “오늘 하루 잘 지냈어요?”라는 안부인사를 어색해하는 문화권에서 자랐다. 보통의 한국인들에게 이 말에 대해 물어보면 절반쯤은 ‘조금 번역투(혹은, 국어책) 같다’고 한다. (요즘은 많이 하는 것 같지만)      


부모님 집에 살 때, 귀가해서 문을 열면 대개 이런 말을 들었다. 

“밥은?” 아니면 “왜 이렇게 늦었어?” 혹은 “왔어?” 대답도 일정했다. 

“먹었어.” 혹은 응, 어, 엉, 아 왜! 


기분이 나쁠 땐 대답을 하는둥 마는둥 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표정이 어두우면 (텔레비전을 보며 밥을 먹던 중에) 엄마가 물어보았다. “얼굴이 왜 그래?” 그러면 술술 말을 쏟아냈다. 엄마는 텔레비젼 볼륨을 낮췄다. 그러면 나는 마음을 풀어놓았다. 사실은, 누가 물어봐 주기를 계속 바라고 바랬으니까.      


친구를 만나도 인사는 별 다르지 않았다. 보통 이렇게. “별 일 없어?” “일은 잘 돼가냐?”

술을 한잔하면 이렇게. “잘 사냐?” 더 나아가면 “결혼 안 하냐?”   

   

안부를 묻지 않는 건 아니다. 묻고는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그런데 습관적으로 매일 하는 보다 격식있는 인사는 아주 어색해 한다. 이십대에는 누가 “잘 지내요?”라고 물으면 순간 당황했다. 제가 잘 지내는 건지, 아닌지 판단해 주시겠어요? 묻고 싶을 정도로, 돌연 자기 성찰의 시간이 되기도 했다.      


외국인과 대화할 때 영어로 “How are you?”를 들으면 머릿속엔 ‘아임 파인 땡큐 앤 유?’가 떠오르지만, 매번 그럴 순 없다. 에어비앤비 손님이 물으면 여전히 당황한다. 그냥 내가 마루에 앉아 있으니까 보여서 말을 거는 것인데, 나는 돌연 진지해진다. 최선을 다해 내 상황을 표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은 수십년간 다른 표현으로 인사를 대신 해 와서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외국 친구가 한국말로  How are you?가 뭐냐고 묻거나, 아침 점심 저녁 인사가 따로 있냐고 묻는다. "인사말이 있긴 하지만, '밥 먹었어?' 라는 말도 자주 듣게 될 거야. 그러면 당황하지마, 밥 아니고 국수 먹었어요, 할 필요는 없어." 농담삼아 이야기한다. 한국말로 “How are you?”는  “식사는 하셨어요?”다. 파파고 번역을 하자면 Did you have lunch? 정도겠다.      




어제 엄마가 B와 나에게 한국요리 강습을 해주러 왔다. 

밥은?

B는 못 알아들었다.

점심밥은 먹었니? 점, 심, 밥. 


언젠가 '한국어로, 어려운 말 안 쓰고 천천히 두 번 말하면 잘 이해해.'라고 한 걸 기억한 모양이다. 

B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었다. 여전히 못 알아들었다는 의미다. 


엄마는 오른손으로 숟가락 드는 모양을 취하며 위아래로 크게 흔들었다. 

밥, 먹는 거, 먹기, 냠냠. 냠냠냠냠. 



우리 사위, 

그동안 잘 지냈고, 어디 안 아프고, 외롭지는 않고, 잠도 잘자고, 잘 살았느냐는 소리다. 

다정한 마음이, 숟가락 판토마임에 담겼다. 



나는 "잘 지냈어?" "어떻게 지냈어?"가 정말 좋았다. 어색하지만 자꾸 했다. 외국어를 배운 것처럼, 자꾸 써 먹고 싶었다. 평소 말수가 적은 J는 잘 지냈냐고 물으니, 매일 이어지는 면접 퍼레이드와 그 '빡치는' 상황을 토로했다. 커피를 더 따라주고 싶을 정도로, 아주 열심히 이야기했다. 너무 귀여웠다. 너, 이녀석 이야기가 간절했구나! '밥 먹었어?' 했으면 '네.'하고 조용했을텐데, 잘 지냈냐는 건 버튼 같았다.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고수였다. 잘 지냈냐는 말에는 대충 답을 뭉갰다. 응, 소리도 안 들렸다. 엄마에게 이건 외국어련가? "엄마, 요즘 뭐가 가장 재미있어? 신나는 일이 있어?


그리고 1시간이 흘렀다. 불판 위에 닭갈비는 타든말든. 나는 엄마 컵에 두 차례 더 카스를 부었다. 가장 신나는 일은 아카펠라 동호회지만, 거기에 또 자기 이익 챙기려는 이상한 여자가 있어서 문제가 되었는데, 다들 쉬쉬할 뿐 아무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며 결론은 "괜히 정의로워지는 내가 이상한 걸까. 나만 예민한가. 나는 60대답지 않게 괜히 나서나. 사람들이 이해가 안돼. 옳지 않은데 왜 '좋게 좋게 넘어가려고 하지'"라는 고민까지 나왔다. 그렇지, 엄마. 신나는 일에는 항상 어려움이 따르지. 100%의 순수한 신남은 어디에도 없어. 그래도 계속 신나자. 


모두들,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잘 지내나요, 어떻게 지내나요, 잘 되가나요 무엇이든?

이라는 질문은 마음을 털어놓게 만드는 마법 단추였다. 



돌이켜 보면, 나는 그 모든 인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참, 별나게도. 

밥은?

이제 오냐?

왔어?

가~(배웅하면서)

들어가~(택시문을 닫아주면서) 


조금 어색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다정하려는 태도가 좋다. 그 태도를 담은 인사가 좋다. 할 말을 완결하고 싶다. 대충, 눙치고, 퉁치지 않고. 또박또박 정확하게. 



헤어질 땐 언제나 어색하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헤어짐의 의식을 치를 때 왜 1%의 마음이 미묘한지는 심리학자가 아니라, 알 수가 없지만. 나에겐 아주 분명하게, 어.색.하다. 그건 알겠다. "가~" 현관문을 닫으며 대충, 대애충 인사를 하고는 뭔가 미진해서 꼭 구구절절 카톡을 보내는 이상한 마음. 


비쥬나 허그처럼 거창한 인사를 하면 '완결'되는 느낌이 들어서 가장 좋은데, 한국에서 그러면 70%의 사람들은 어색해서 자꾸 엉덩이를 뺀다.  


그래서 말하려고 한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 

잘 지내, 

우리 또 만나.


초등학생같은 이 인사가 왜 그렇게 좋을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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