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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May 11. 2018

흰둥이와 검둥이: 같이 살아봅시다

개처럼 싸우는 자매의 본격 한 방 살이 에피소드

같은 배에서 나왔다지만 너무 다른 자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자매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단, 언니를 이해해보려는 동생의 일방적이고 눈물나는 노력이라고 할까. 여전히 개같이 싸우지만 개 1호, 2호로 표현할 수 없으니 귀여움을 가득 담아 흰둥이(27세)와 검둥이(29세)러 표현하기로 정했다. '우리.. 귀여울 수 있을까?'


1 날이 좋아서, 좋지 않아서 모든 날이 이해할 수 없는 날이었다

<King of the Hill>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토록 꿈꾸던 독립을 했다. <흰둥이 독립 보고서>를 6장 분량으로 내가 왜 나가 살아야 하는지와 아빠를 설득할 수 있도록 요즘 월세의 시세, 내가 거주할 동네까지 점쳐 마지막엔 ‘경제적인 보탬을 받지 않겠다’는 용기를 담은 문장도 빼먹지 않았다. 서류봉투에 담아 아빠에게 드렸고 힘겹게 독립을 이뤄냈다. 감격의 순간도 잠시. 윙-윙 소리를 내는 냉장고엔 2리터 생수 한 병뿐이었고 텅 빈 냉장고처럼 내 집은 주인 없이 대부분 텅 비어있었다. 야근이 잦았고 건강은 안녕치 못했다. 건강이 전부였던 내 몸은 얼마 못 가 야근을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신호라도 보내듯 코피가 퍽 하면 쏟아져 나왔다. 울면서 퇴사를 결정했다. 스파르타식 회사였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와 선배들 그리고 내 일이 좋았다. 눈물이 날 수 밖에. ‘나 앞으로 어떡하지’ 


아무 계획 없이 회사를 그만두게 됐고 돈벌이가 끊기니 월세를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거의 2년 만에 돌아간 본가 내 방엔 외할머니가 이미 자리를 차지하셨고 무계획으로 밀고 들어온 작은 딸이 머물 공간은 큰딸 방에 얹혀사는 것뿐. 겸허히 받아들이고 언니랑 ‘한 방 살이’가 시작됐다.


2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다르냐 하면

<King of the hill> 

언니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자랑이었다. 학창시절 가장 큰 자랑인 우수한 성적의 말 잘 듣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받은 상장을 모은 파일이 몇 권이나 되고 대학교는 장학금을 받으면서 휴학 없이 트리플(사학, 법학, 일어) 전공을 이수했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까지 했다. 반대로 나는 터질 듯 줄인 교복에 파마머리, 텅 빈 가방을 들고 학교엘 다녔다. 비극적으로 검둥이랑 초-중-고를 함께 다닌 탓에 검둥이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은 내가 먼지 같은 잘못을 해도 죽을 죄를 지은 듯이 혼냈다. “검둥이 반만 따라가라” 그리고 검둥이는 사고만 치고 다니는 동생인 내가 쪽팔리다고 했다. 그래도 꿋꿋하게 마이웨이를 걸으며 집안의 기둥을 뽑아 디자인을 공부했고 ‘명문대 아니면 등록금은 없다’고 하길래 아빠에게 A 대학교에 합격했다 뻥치고 등록금을 받아 부모님 몰래 B 대학을 2년 동안 다니다가 A 대학교로 몰래 편입했다.  


거기에, 같은 화장품을 쓸 수 없게 피부 톤이 다르고, 키는 검둥이랑 10cm이상 차이가 난다. 키 크려고 노력은 내가 많이 했는데. 억울하다. 그리고 검둥이는 안경을 끼고, 나는 코를 뚫었다.


3 같은 영역을 쓰니 일어나는 참사

<King of the Hill>의 Bobby 나처럼 울고있다

검둥이랑 같은 방을 쓰기 시작하면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바로 제로가 됐다. 추위와 더위 외엔 보호되는 것이 없다. 서로 생활에 터치하지 않기 위해 각자의 책상을 등지게 뒀다. 음악을 켜면, “소리 좀 줄여”라는 말에 큰맘먹고산 블루투스 스피커는 먼지가 수북하게 쌓이고 몇 번을 말 싸움 하다 결국 이어폰을 사용하게 됐다. 어쩌다 생긴 썸남과의 전화통화는 새벽이 가까운 시간에도 이불을 박차고 집 밖에 나가서 통화해야 하는 불편함은 물론이거니와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고 있다가 ‘야한 장면’이 나오면 19세를 예전에 뛰어넘었는데도 불구하고 등에 땀이 나고 검둥이가 혹시라도 방에 있는지 뒤를 돌아보는 일은 습관이 됐다. 


어느 날은 검둥이가 모니터 옆쪽에 붙여둔 메모지를 봤다. “검둥아 오늘 하루에 감사하자!”, “검둥이는 세상에 하나뿐!” 이런 스스로를 응원하는 멘트에 캐릭터까지 손으로 그려놓은 메모였다. “별거 다하네, 더 붙으면 놀려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글로 된 메모지는 다 떼고 내가 읽을 수 없는 일본어랑 한자로 적어놨더라. 나는 알고 있다. 분명 나보고 읽지 말라는 표식이다. 혹시 내 욕인가? 검둥이는 이렇게 가끔 전공을 살려 지식으로 공격한다. 이번엔 일본어로 공격한 것. 자주 역사랑 법을 들먹이며 나를 깎아내리는 걸 좋아한다. 특히 역사에 취약한 내 모습을 보면 거의 벌레 보듯 혐오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공격한다. 재수없다.


'근데, 우리 잘 지낼 수 있을까?'

 

덧, ’영역 다툼’이라고 검색해 보았습니다. “두 마리의 강아지를 억지로 한 공간에 붙여놓으면 스트레스받으니, 장난감이나 간식으로 친해지게 하세요.”라는 ‘착하게 살아라’님의 답변이 눈에 들어옵니다. “엄마, 간식 주세요.”


흰둥이

자매에서 동생을 맡고있으며 

본격 자매의 '한 방 살이' 에피소드를 쓴다

"금요일에 만나요"

fake-na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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