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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Jun 29. 2021

첫 관심 사원(상)

인생사 퇴사가 뭐라고 사표를 던지면 세상이 끝나는 것도 내 인생사 드라마가 드디어 종지부를 찍는 것도 아닌데도 그게 그렇게 힘이 들어 나는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래도 단 한 번 퇴사를 선언한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난 잠시나마 관심 병사, 아니 관심 사원이 되었다.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었다. '회사원들은 마음 한 구석에 사표 한 장씩을 안고 산다.' 취준생 때는 그 사표를 안고 사는 직장인의 마음이 사치스럽고 그래서 그 사치가 정말 부러웠다. 사표를 쥘 수 있는 능력의 갈망은 시간이 지나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미디어의 직장인1이 된 나는 사표를 품으며 출근하는 사치를 부리고 있다. 학생에서 직장인으로의 신분 전환은 사표를 안고 사는 마음이 사치스러움보단 어딘가 아련함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에 쥔 채 하루를 시작해 손에 쥔 채 끝을 내는 것. 떠나고 싶은 마음에 사표를 품었지만 마음과는 달리 사표 조차 (떠나)보내주지 못하고 오늘을 버텨 나가는 것이 직장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제 직장인이 되어 생활을 해보니 사표를 품에 안은 것은 끝을 내고 싶지만 끝을 내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느낌이었다. 직장 생활은 자유(퇴근과 출근)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제약(출근과 퇴근 사이) 안에 자신을 가두는 행위 같다. 게다가 학생에서 직장인이 되어서는 정글을 헤쳐가며 도움을 받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홀로서기를 하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다(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종이 한 장 내미는 게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취업 이후에서야 뼈가 저리도록 체감했다. 


그럼에도 나의 생엔 그날이 존재했다. 간 밤에 무슨 꿈을 꾸었는지 그날은 재택근무가 아닌 출근을 결정했다.(저자의 주장에 따르자면 간 밤에 문 틈 사이로,  꿈속으로 들어와 무어라 나를 설득했으리라,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게 출처를 알 수 없는(간 밤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되는(?)) 용기와 확신을 안고 회사로 향했다.(그리고 그땐 정말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진심이다. 나는 궁서체다.)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해 회사는 재택근무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보통의 날이었다면 나는 쾌재를 부르며 출근 10분 전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며 노트북 앞에 앉았을 테지만 그날은 무언가 달랐다.(무엇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회사를 가면서 걱정이 된 부분은 퇴사를 말해야 하는 대상이 두어 번 본 게 전부인 새로운 팀장이라는 사실이었다. 팀장이 된 지 얼마 안 된 그야말로 꼬꼬마 팀장인 그는 그날 나를 세 번째쯤 본 날이었으리라. 만남의 횟수에 비해 내가 준비한 말은 다소 무거운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도 이기지 못한 출처 모를 그 용기는 이미 마음속에 퇴직서를 준비한 채 팀장님께 면담을 요청한 상태였다. 

결전의 시간은 곧이어 다가왔다. 공허한 회의실에 팀장님과 나 그리고 그 사이에 적막감이 차올랐다. 팀원이 먼저 면담을 요청했기에 짐작컨대 팀장은 이 면담의 목적이 퇴사 통보를 위한 자리였음을 감지했으리라 짐작한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퇴사 통보 소식'을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고 미루기 위해 팀장은 아무도 묻지 않은 자신의 근황을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매를 맞기 싫은 어린아이처럼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더니 급기야 회사를 대표해 회사 매력 어필을 하기 시작했다. 단연 매력 어필의 귀재라고 느낀 이유는 팀장 또한 퇴사 경험이 있었고 퇴사 전과 후의 회사는 지금 이 회사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다시 돌아오게 만들 만큼 좋은 회사라는 점을 강조하며 다가올 현실을 애써 부정하는 그가 안쓰러웠다. 그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한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고 갔지만, 끝끝내 적막이 찾아왔고 기다렸다는 듯 내 입에서는 “저…. 퇴사라는 것을 할까 합니다.”라는 말을 내뱉어 다시금 적막을 깨버렸다.


나름의 준비를 마쳤다고 하지만 마음의 준비 이외의 것은 부실한 나였다. 3년간 잘 다녀온 회사를 왜 그만두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 나올 것을 알면서도 철저한 준비라는 허울을 벗기니 퇴사 사유가 없는 것이 아닌가. 있어 보이는 대답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쭈뼛쭈뼛, ‘저 … 힘이 들어서요. 조금은 쉬고 싶습니다.’라는 솔직한 말을 뱉고야 말았다.(‘별안간 퇴사 사유’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긴말 필요 없이 단박에 퇴사하기’ 수업은 필히 생겨 나야 한다.) 한 번 더 붙잡기 좋은 사유에 퇴사가 수월해질 리 없었다. 나름의 몫을 해내던 사원의 ‘그만두겠습니다’라는 말은 생각할 시간이라는 명목 하에 며칠을 더 쥐어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로 미뤄지게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집이었다. 사표는 아직도 내게 있었다. (젠장)그리고 하나 더, 왜 퇴사하고 싶은 지 알아 올 것. 일을 때려치고 싶었는데 업무를 하나 더 받아온 격이었다.(젠장, 젠장)


+ 첫 관심사원(하)편에서 계속됩니다. 



by 로운

말보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에세이를 씁니다. 덜 부끄러운 존재가 되고 싶고, 오롯이 나로 살고 싶어 매일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나만의 것들로 다가오는 세월을 채우는 중입니다. 요즘은 매일 아침 일어나 오늘은 어떠한 나로 하루를 채워갈지 생각합니다. 오늘의 불완전한 나를 하루에 하나씩 만들다 보면 언젠가 온전함이 깃들어 있기를 기대하면서. 덜 웃기면서 덜 진지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로운의 브런치 https://brunch.co.kr/@peace-f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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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글워크숍 중에 초고를 쓴 뒤 발전시켜 완성한, 수강생들의 원고를 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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