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존형 인간의 (프랑스 바캉스 기간에) 혼자 일하기
나는 혼자 일한다. 매우 산만하고 매우 주의력 결핍이며 매우 타인의존적인 내가 13년 간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한국에서, 게다가 홍대 근처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일의 자극과 일의 동료들이 도처에 있었다.
프리랜서 초기에는 언제나 '갑'이 있어서 그들이 주문하는대로 납품하면 되었다. 이후 내 1인 비즈니스를 꾸리면서는 동료와 친구들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했다. 성실하고 다정한 친구들이 자주 나를 챙겨주었다. "언니, 원고 마감 다했어?"(하러 간다) "은성, 팟캐 녹음 언제할까요?" (그제야 캘린더를 펼친다) 길에서 편집자를 마주친 뒤 다른 골목으로 돌아간다. (하나라도 급하게 써서 메일을 보낸다) 심장이 터질 듯한 기분으로 13년을 살아왔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일년 넘게 남프랑스 소도시에서 혼자 일하는 중이다. 당연히....
애로사항이 많다. 애로애로애로...
심장은 고요한데, 일이 안 된다.........
(제목의 사진은 우리 동네다. 매일의 퇴근길이 이러하다. 아름답죠? 아름답긴 해..)
세계 어딘가에 나같은 유형의 프리랜서가 있겠지 싶어, 업무일지를 시작했다. 그들에게 조금의 위안과 노하우를 줄 수 있다면 기쁠 것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해외에서 비대면으로 일하는 프리랜서로 살면서의 업무일지를 써보려한다. 코로나 시대가 끝나지 않고 모두가 영원히 비대면으로 일하게 되면 내 일지도 의미가 있겠지.
이순신이나 백범도 자신의 일지가 그렇게 오래 읽힐 줄은 몰랐겠지. 나는 언제나 꿈이 크다.
책상 앞에는 '하루에 질문 3개 이상 하기' 라고 쓴 포스트 잇을 붙여놓았다.
거짓말이다. 이 정도 한국어는 파트너도 알아볼 수 있어서, 붙이자마자 바로 떼버렸다.
하여간 일상은 질문으로 이뤄진다. 질문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해낼 수가 없다. 해외에서 혼자 일하고 공부하려면 말이다. 현지인들은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이방인에게는 당도하지 않으니까, 내 쪽에서 먼저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데 나는 원래 질문하기 전에 여러 번 고민하는 타입으로 성장해서, 이 당연한 일을 의무적으로 해야만 한다.
오늘의 고민은 '일을 열심히 하면 고독해진다'는 것이었다. 코로나 시대의 유럽 이민자, 게다가 프리랜서로 살면서 고독은 한집에 사는 파트너가 됐다.
나는 프랑스의 소도시에 머물며 혼자 일한다. 학교도 직장도 없다. 그냥 거주민이다. 한달살기, 그런 거 아니다. 비대면으로 일하니까 '노마드 워커'지만, 코로나 시대라서 우리 동네에만 있다.
주중에 사흘 정도는 한국의 수강생들이 보낸 원고 첨삭에 전력한다. 당연히 이때가 고독의 절정이다. 한국어의 섬세하고 정교한 결에 파묻혀야만 이 일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기간에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일에 뇌의 에너지를 배분하기가 꺼려진다. 그러니까 몸은 유럽 어드메에 머무는데, 내 뇌의 회로들은 맥북과 연동되어 거대한 한국어 덩어리를 둥둥 띄운다는 의미다. (영드 <이어즈 앤 이어즈> 마지막 장면에서 인간이 죽은 후, 그 인간의 뇌가 클라우드에 이관되어 영생하는 장면을 자주 떠올린다. 그와 비슷한 컨디션이라면 과장일까?)
이 기간에는 프랑스 친구를 만나기도 애매해진다. 주의력 결핍이 강한 ADHD를 의심하는 내 상태로서는 좀 위험하다. 프랑스 친구를 만나는 순간 한국어 자아의 업무는 극히 사소한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저기, 서랍에 들어가 있어!")
주의력 파트는 바로 프랑스 자아 쪽으로 가서 되돌아 오지 않는다. 주인을 만난 충실한 개처럼 꼬리를 펄떡거리며 "무엇이든 궁금해하고 끊임없이 농담을 하는" 철딱서니 자아가 된다. 나의 불어는 아마 프랑스 유아 1살 정도일 것이다. 사고력은 언어 수준에 기댄다. 게다가 7-8월은 프랑스의 거대한 바캉스 시즌이다. 작업실에는 한두명의 '가여운' 작업자들만 오간다. 매일 출근하는 나에게 모두가 '바캉스는 언제 가냐'고 묻는다. 게다가, 우리 동네는 관광도시라서 7월과 8월에는 여행객들로 가득찼다. 집 근처 광장에는 밤 11시까지 야외 콘서트가 열린다. 이전 학교 친구들 그룹 톡에는 하루에 100개씩 휴가지 사진이 올라온다. 다들 나에게 너는 어디 있냐고 묻는다.
상황은 이러하니, 고독을 관리하는 데에 꽤 에너지가 든다.
(다 핑계다. 휴가 기간이 아닐 때에도 고독하긴 매한가지였다)
답을 찾고 싶을 때는 우선 타인에게 질문을 던진다.
종종 줌을 켜고 함께 일하는 옐로우덕 언니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그는 에세이스트이자 그림작가로 네덜란드에 거주하며 작업을 성실하게 이어가는 중이다. 전세계 각국을 수개월씩 누비며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유지하는 데에는 어떤 대단한 비결이 있을 듯 싶었다.
(옐로우덕의 브런치: https://brunch.co.kr/@yellowduck)
"언니는 노마드로 살면서 어떻게 혼자 꾸준히 작업했어요? 비결이 궁금해요. 추진력과 지속력을 어떻게 유지해요? 저는 좀 고독해요. 흥이 안 나요."
"비결이라기 보다는...그냥 성격 차이 같아. 자기는 아무래도 주변인들이 주는 에너지에서 힘을 얻는 편이고, 난 딱히 그렇지 않으니까. 나는 그냥 '이걸 그리자' '이걸 쓰자'는 목표가 생기면, 하게 되거든. 좀 단순무대뽀 스타일이랄까?"
역시 대화를 자주 나눠온 친구는 나에게 답을 준다. 맞다. 성향의 차이다. 나는 언니가 너무 부러워서 부러워, 부러워요, 부럽습니다를 연신 외쳤다.
돌아보자. '목표가 생기면, 하게 된다'. 내 인생에 그런 적이 있었나?
목표를 이룬 적은 많지만, 언제나 타인에 기댔다. 업무 인생을 요약해보자. 나댈 때마다 누군가 봐 주었다. 그룹 안에 있었다. 대면시대의 일하기였다.
프리랜서가 되었던 12년 전? 자유기고가 수업에서 만난 친구들을 모아 글쓰기 스터디를 하다가, 그들에게 힘입어 프리랜서 기자가 됐다. 남들이 자기소개서를 쓰고 기획안을 만들기에 어영부영 나도 했다. 그 글쓰기 스터디에서 리더였던 나는 종종 담당한 챕터를 강의했고, 그걸 본 이에 의해 자유기고가 강의 강사가 됐다. 이후에 단행본은 어떻게 냈나? 친구가 연 공유작업실에 초대받지 않았다면 책은 아마 못 냈다. 작업실에서 그 친구와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고, 그 모임에서 쓴 글로 책을 냈다. 소글워크숍 https://blog.naver.com/purplewater 은 어떻게 만들었나? 공유작업실에 큰 탁자와 여러 개의 의자가 있어 용기를 냈다. (따로 강의실을 빌려야 했다면, 그 돈 아까워 1년은 더 미루었을 것) 이민은 어떻게 왔나? 파트너가 프랑스인이어서 왔다.
자, 혼자 해낸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여기서 혼자 일한다.
프랑스 프리랜서들의 공유작업실에 다니지만 그들은 내가 하는 일을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은 서로 일감을 주고 받기도 하고 서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내가 하는 일의 사소한 고민을 그들과 나누기는 어렵다.
게다가 프랑스어로? 관두자.
다음 회부터는 나만의 노하우를 더 나누어 보겠다. 오늘은 현상을 쓰느라 에너지를 다 썼다. 아마 다음번에도 현상을 좀 더 써볼 것 같다.
뱀발: 그래도 이 글 덕에 이 책을 발견했다. 일단 사서 읽는 것으로 오늘의 업무일지를 종료한다. 글을 쓰면, 나만 하는 고민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