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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Jun 25. 2018

달콤한 것은 모두 녹아내려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마음을 어디로든 흘러가도록 하기 위하여

프랑스 남자들은 달콤하다고 들었다.

예컨대 이런 식. 사랑하는 여자의 손톱에 칠해진 푸른색 네일 컬러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고들.

“네 손가락 위에 검푸른 파도가 넘실거려. 달콤한 웨이브 속에서 호흡하는 내 영혼.”

나쁘지 않다. 아름다운 대사가 궁금해서 레인보우 컬러를 하나씩 칠해 볼 것 같다. 일주일 내내 손가락을 한들거릴 것 같다.


이런 건 스테레오 타입이지만, 덕분에 덕을 좀 보았다.  연인이 프랑스 사람이라고 할 때마다 사람들은 얼른 그를 만나고 싶어했다. 대학 친구 모임에서 내 연인이 프랑스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 얼마나 웃었던지.

모두 함께 “우.....프렌치! 로-맨틱!” (광고 같았다)

혹은 설레는 표정으로 “프로포즈는 어떻게 했어? 장난 아니었겠다.” (프로포즈는 내가 했는데)

또는 “매일 매일 로맨틱한 대사 치고 그래?”

"프랑스 남자들은 정말 프렌치 키스 해?" 이런 건 몹시 귀여웠다. (여보게, 한국인은 안 하나요?)



물론 현대 프랑스 남성들을 저런 식으로 달콤하지는 않다. 프랑스 문학에 이런 게 있긴 하다. ‘걀랑트리’는 여인의 환심을 사려는 태도, 그러한 태도에서 비롯된 낭만적인 행동이나 대사를 이른다. 학부 시절 배운 프랑스 극작가 장 바티스트 라신의 고전 희곡에는 정말로 그런 문장이 흘러 나왔다. 그러니까 그들은 ‘사랑해’ 하지 않고 ‘신이 빚어낸 아름다움을 지닌 당신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라는 말을 숨 쉬듯 했다.


“세상에. 라신은 17세기 작가예요. 당신은 조선 시대 소설가처럼 말할 수 있어요?"

연애 초반, 프랑스인의 걀랑트리에 대해 묻자 B는 한참을 웃더니 말했다.

“나도 할 수는 있어요. 원하면 매일 아침 해 줄게요. 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은 라면을 먹고 자서 곰처럼 부은 얼굴도 눈이 부시네. 나트륨이 그녀의 눈두덩을 귀여운 아기처럼 보이게 했네.”


그는 다이아몬드 반지, 수십 개의 촛불, 무릎을 꿇고 바치는 대사, 저 멀리서 연주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사람들의 박수...같은 식의 프로포즈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런 식의 로맨틱을 유머로 소비한다. 내가 데려가 함께 <라라랜드>를 본 날, 두 연인이 하늘로 날아올라 왈츠를 추는 로맨틱한 장면에서 얼마나 껄껄거리며 웃던지.


   


모국어의 결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우리는 서로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말한다. 서로가 태어나면서부터 영혼에 새겨온 모국어가 아니라, 제 3의 언어를 '렌트'해서 쓴다는 것. 정말 언어를 빌려쓰는 느낌이다. 가끔은 세계 공용어인 영어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깊이 감사를 드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영어를 연마한다고 해도, 일렁이는 마음의 결을 온전하게 전할 수는 없을 테지. 이 마음과 저 마음 사이 아슬아슬한 경계에 한 발로 선 기분 같은 것에 대해 표현하기는 어려울 테지. 가끔은 그 사실이 몹시 서글퍼진다. 내가 평생 읽고 듣고 본 노래와 영화와 소설 속 신비로운 언어의 숲을 구경시켜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했더라. 도무지 방법을 찾지 못해서, 반복을 택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여러 번 전했다. 사랑해, 쥬뗌므, 워아이니, 아이시떼루, 띠아모, 이히리베디히, 떼끼에로 등을 연달아 속삭인 적도 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의 어떤 점을 사랑하는지 말해주는 건 내 특기이자 장점인데, 열심히 영어로 표현하다 보면 도리어 마음이 상했다. 접속사와 관계 대명사와 현재완료 사이에서 내 연애 시는 갈곳을 잃었다. 빈 집이 되었다. 눈을 감고 상상한 내용을 글로 옮겼을 때의 실망감 알잖아요? 그보다 한 10배쯤 힘이 들었다. 황폐한 나의 언어여.




그는 한국에 살면서는 집에서도 불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가끔 딴 생각을 하다 물을 쏟았을 때에나 상상을 하다가 모서리에 부딪쳤을 때나 한다. 쀼떵 메흐드 뻬슈. 고양이를 부를 때도 영어나 한국어를 쓰는 것을 보고 정말 신기했다. 기쁘고 즐겁고 답답하고 안타깝고 슬플 때, 즉 내가 논리적이지 않은 모든 때 (그러니까 아주 자주) 한국어로 말하고 그 다음에 영어로 번역하는 나와는 다르다.


늘 말과 글에 연연하는 나를 보며 그가 말한다.

"랭기지 이즈 랭기지.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을 모두 전할 수는 없어. 언어로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잖아. 지금 느끼는 마음을 100% 언어화할 수 있어?"

알아, 안다구. 교수님아. 외롭고 고독하고 쓸쓸하고 내가 미울 때마다 흰 종이 가득 어떤 나라를 그리던 네가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나는 언어의 가능성을 최대한 믿어보려고 하는 사람이라구. 누가 좋아지면 그림 대신에 내가 아는 단어로 끝도 없이 써 보는 사람이라구.


그는 어떻게 했나. 그는 말하는 대신, 열심히 들었다. 들은 것을 소중하게 기억했다.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는 나를 안타까워 하는 대신, 많은 것을 주었다.


포르투갈에 사 보고 싶다고 여름의 어느날 스치듯 한 말을 기억했다. <포르투갈>이란 제목의 만화책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다. 파리의 비싼 레스토랑에서 홍합요리를 아껴 먹다가 망원 시장 홍합을 이만원 어치(산더미  된다) 먹고 싶다고 스치듯 한 말을 기억했다. 한국에 오자마자 홍합 스튜를 끓여주었다. 언젠가 잠결에 스치듯 한 말을 기억해서 동화책에 나오는 커다랗고 넙적한 콩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아플 때마다 단 것을 주었다.


누군가의 스치듯 한 말에 마음을 쿡 찔려서 거실의 불을 끄고 내내 무표정으로 앉아 있을 때, 자려고 일어나 보면 곁에 따뜻한 차 한 컵과 오렌지 맛 초콜릿이 놓여있었다. 먼저 잔다고 아주 조용히 말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내가 생각에 잠겨 있어도 묻지 않고 재촉하지 않고 두고 보았다. 그저 달콤한 것을 한 조각 내 곁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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