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에게 보내는 편지
어릴 적에 너는 어떤 사람이었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게 그렇게 궁금하잖아. 처음 배운 단어는 무엇이었을지, 별명은 뭐였는지, 공룡을 좋아했을지 인디언에 빠졌었을지, 할아버지는 어린 너를 어떻게 귀여워했을지. 얼렀을지.
호기롭게 질문을 던진 후 언제나 내 이야기부터 쏟아내지. 그게 나야. 그날도 나의 다섯살 적을. 있잖아 나는, 작은 물웅덩이를 만나면 언제나 "흐잇차!" 소리만 내고는 어이없게 폭 빠져서 슬리퍼를 적셨어. 시장에서 큰 개를 마주치면 엄마 손을 부서지도록 쥐고. 머리를 양쪽으로 묶어주지 않으면 유치원을 안 간다고 버텼지. 먹는 걸 너무 좋아해서 사과 한 알을 쥐어주면 혼자서도 몇 시간을 잘 놀아서 엄마가 너무 편했대. 너무 그렇게 너무 착하고 너무 순하고 너무 잘 먹고. 너무 너무.
자다가 문득 한 시간을 이유 없이 서럽게 울어서 늘 오래 혼나던 아이였어. 얘가 왜 이러나 무슨 병이 있나, 엄마는 그랬대. 그녀는 첫째인 나를 어떻게 키울지 늘 헷갈려 했거든. 너무 다르지? 지금은 물웅덩이 따위 발로 뻥뻥 차는데. 개만 보면 어쩔 줄을 모르는데. 그래도 여전히 해질녘에 낮잠에서 깨어나면 한동안을 서글퍼. 숙제도 안 했는데 하루가 지는 기분. 다들 나만 두고 멀리 멀리 떠나버린 것 같고.
어릴 땐 늘 조개껍질 속에 숨고 싶었어, 라고 조용히 너는 말을 꺼냈어. 떠드는 나를 보고 기운이 났을까? 언젠가 네 몸에 길처럼 누운 하얀 흉터를 보고, 이건 뭐냐고 조심조심 물었을 때. 너는 "호랑이와 싸웠어"라고 대답했지. 난 정말 그 말을 잠깐 믿었다구! 그때 함께 꽃처럼 커다랗게 웃었는데 우리는.
삶은 그렇게 영화같기보다는 지루한 일기장 같으니까, 너는 오래 아팠다고 했어. 다른 아이들과 다를 때 어리둥절했을까.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때 소라껍데기 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았을까. 청년이 된 너는 어디든 여행할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용기를 냈고, 누가 말려도 듣지 않았고, 선택했고, 고통과 고독의 시간을 너답게 조용히 이겨냈고, 그렇게 나에게 왔어.
알지, 나는 다리를 저는 개를 보고도 한참을 우는 사람인데. 대체 날보고 어쩌란 거냐! 코가 또 빨개지려해서 당나귀처럼 움찔거리며 버텨보려 하자 네가 말했어.
"나는 삶을 사랑해. 너를 만나고 더 그렇게 됐어. 삶은 정말 좋은 거야."
그렇게 생각한다고.
누가 좋아지면 나는 항상 최악을 상상해. 모기가 파리가 이잉이잉 끈적하고 덥고 음식은 끔찍하고 사람들은 시끄러워. 아아 너는 왜 눈치없이 말이 많은 걸까, 싶을 때 상대를 사랑할 수 있을지. 여러 번 눈을 감고 연습해도, 정말로 만약에 그렇게 될 때, 되고야 말 때. 눈을 감아야겠지.
호랑이와 싸우는 너를 상상할 거야. 무기도 없이 맨 손으로, 갑옷도 없이 하얀 티셔츠와 검은 청바지를 입고서. 어느새 너는 호랑이와 친구가 되고, 돌아서 나에게 오겠지. 살아있어서 참 좋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