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m Beach,
Don't Kill My Vibe

테이블 야자

by 황은솔
야자수가 늘어선 해변에 가본 적이 있나요?


전 없어요, 하고 단호히 적었다가 문득 떠오른 기억에 키보드 위를 허우적대던 손이 멈췄습니다. 구름은커녕 음영조차 없이 파랗기만 한 하늘과 짙은 청록의 바다, 그리고 하얀 모래사장 위 점점이 누워있던 형형색색의 사람들. 바르셀로나의 거리엔 야자나무가 가득했고 키가 큰 나무들과 키가 큰 사람들 틈에서 긴장한 종종걸음의 키가 작은 여자애. 앞선 이의 어깨를 보며 계속 걸어가니 끝없는 무無가 나타났습니다. 바다와 맣닿은 하늘은 머리 위로 이어져 보이지 않는 반대편 끝을 돌아 나와 바다로 다시 흘러들어간 듯했지요.


끝없는 무無와, 어디에도 시선을 둘 필요 없기에 더 아름다운 바다, 그다음으로 떠오른 장면은 바닷바람에 펄럭이는 야자나무 잎과 날아갈 듯 휘날리는 비치웨어 치맛자락 - 따가운 햇살과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내며 모래 위에 몸을 뉘인 연인은 아름다웠고, 거의 발가벗은 채로 누워있어도 누구도 시선 두는 이가 없기에 존재 그 자체로 있을 수 있었던 이국의 땅끝.


그래서일까요. 잊혔던 기억을 꺼내본 후로 저에게 야자나무는 '자유'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무엇이 숨었든 다 보여줄 것처럼 틈이 많지만, 예측하기 힘들게 흔들리고 늘어진 커다란 잎사귀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다 가릴 수 있어서, 눈에 보이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문제 등은 의미가 없는 것이겠지요.


그래서요. 작은 원룸 방에 아담한 테이블 야자 하나를 들였습니다. 커다란 팜 트리가 지척에 보이는 해변이 방갈로라면 더 좋겠지만, 지금의 저로서는 두 손으로 꼭 감싸 쥘 수 있는 작은 테이블 야자로도 충분합니다. 바르셀로나에서 보았던 야자수를 축소해놓은 듯 작고 여린 태 속에 펄럭이는 잎사귀를 빼곡히 내민 모습이 '자취방'이라는 작은 우주에 자유를 선사하기에 꼭 맞습니다. 한 줌의 흙과 한 움큼의 테이블 야자, 그걸로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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