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가을 징크스
가을에 태어났다. 그래서 항상 가을은 기대의 계절이었다. 기억에 남는 최초의 가을 이미지는 끝 모를 높은 하늘이었다. 푸르다 못해 서늘했던 그 빛깔을 잊기 어렵다. 미세먼지가 심해져 보기 어려워진 하늘이지만 그나마 요즘은 다시금 대기가 맑아지고 있어 간혹 비슷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어린 시절까지의 기억은 그렇다.
대학을 진학하고 가을이 되어서야 군대를 가야겠다는 각오를 했다. 방탕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순박하게 군입대 전 생활을 했다. 술 마시고, 수업시간에는 자고, 다시 술을 마시는 생활의 무한반복이었을까? 유흥을 즐겼지만 유흥이란 단어가 민망할 건전방탕 생활이었다. 외박은 삼한사온처럼 주기적이었다. 아버지는 나중에 차라리 빨리 군대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만큼 집에는 문젯거리였다.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을 했다. 첫사랑을 했다. 혼신을 다한 적은 없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고, 그걸 그 친구는 무척 좋아했다. 그리고 이듬해 가을이 되어서 이별을 했다. 헤어진 이유는 여럿이 있겠지만 결국 나의 미숙함이 원인이었다. 지금의 내가 돌아간다면 아마도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서라. 흘러간 추억은 흘러가서 멀찌감치에서 관조하니 아름다운 것.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돌고 돌아 또다시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 친구와의 만남과 끝 모두 운명이 아니라 숙명이었으니까.
그 후로는 항상 가을이 되면 나의 불안감이 늘어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확히는 무엇을 하든 일이 잘 되지 않아 꼬이기 일 수였다. 그 후 연애는 모조리 가을이 되어서야 이별을 고했었고, 첫 번째 사업이 파국으로 치닿던 것도 가을 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가을만 되면 인생이 꼬이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또다시 몇 해가 지난가을에는 절친이 죽었다. 사업실패 후 여러 지인에게 사기를 치고 다녔다고 한다. 죽기 전 한 달쯤 전에 내게도 전화가 왔었다. 내 사업의 실패 직 후였던 때라 누구도 믿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의심병이 커진 상태에서 그 친구의 연락을 나는 그대로 믿지 않았다. 어머니의 병원비를 부탁한다는 말도 믿지 않았다. 나름 검증을 했고 사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친구야, 나중에 시간이 흘러 니 새끼 세뱃돈 주고 그날 나랑 소주 한잔하고 싶다면 이쯤에서 고만해라"라고 했다. 어머님과 누님을 제외한 친인척과 단절되었던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내게 혹, 자신이 자식을 낳으면 꼭 내게 데려와서 세배를 시키겠다고 했었기에 그 친구에게는 상처가 되었나 보다.
자살을 했다. 외롭고 남루한 여관방에서 그 친구는 목을 매서 자살을 했다고 한다. 사망 추정일은 내 생일이라는 말에 가을바람은 서늘했다. 지갑을 열어보니 천 원짜리 한 장과 동전 몇 개, 친구 어머니 사진, 그리고 내 증명사진만이 나왔다. 서늘했던 가을바람은 서러웠다. "사기를 쳤으면 잘이나 처먹고 호의호식이라도 하지, 개새끼" 실제 사기를 당해 몇억을 잃은 친구의 눈물 섞인 푸념이었다.
내게 가을은 그랬다. 꼭 누구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어느 심리학자의 말처럼 불행했던 기억을 오랫동안 기억하려는 인간의 심리 때문에 불운만이 가을에 넘실 거리는 것일 수도 있다. 서른의 중반 때까지 나의 가을은 불운의 아이콘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가을이 왔고 어떤 여인을 만났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나의 아내가 되었다. 이 사람과의 가을은 기억 남을 일이 크지 않다. 다른 모든 계절과 동일한 일정한 사람이기에. 아니, 그런 불운의 연속을 핑계 댈 만큼 평범치는 않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 징크스라는 게 결국 사람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하지 않던가. 적어도 지금만큼은 가을의 징크스는 사라진 듯하다. 감사할 뿐이다.
_ 이 글은 이기주 작가의 냅킨에세이 그룹 '쓰담'에 올린 내용입니다.